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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호 10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지난 5일 수퍼 화요일 경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 자신이 소유한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경쟁자였던 니키 헤일리 후보가 다음날 사퇴함에 따라 트럼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대권 경쟁을 벌이게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이 집권하려면 당의 대선 후보가 기업이나 재력가들의 후원을 끌어들여야 한다. 소위 큰손들을 얼마나 많이 엮어내는가에 백악관 입성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손들은 대통령 선거 뿐만 아니라 상·하원 선거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을 후원하는 기업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행동하지만, 공화당 쪽의 큰 손들은 한두 그룹으로 뭉쳐있다. 공화당 쪽의 큰손들은 대부분 ‘코크 네트워크’라고 하는 거대 정치 후원조직에 소속돼 있다. 1950년대까지가 록펠러(Rockefeller) 시대였다면, 지금은 코크(Koch)의 시대다. 데이비드 코크와 찰스 코크 형제가 이끄는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공개 개인기업인 ‘코크 인더스트리’의 자금이 공화당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소위 ‘검은 돈(Dark Money)’이라고 한다. 코크 인더스트리는 미국의 방대한 에너지 산업을 주도한다. 코크 형제는 미 대륙에 깔린 6500㎞가 넘는 원유 수송관과 알래스카와 텍사스, 그리고 미네소타의 원유 정제시설 및 이와 관련된 설비들을 소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원목 및 제지회사, 석탄 및 화학회사 등을 대거 소유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이익이 두 형제를 전 세계 10위권 내의 부자로 만들었다.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는 2019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코크 형제는 막대한 정치자금을 한곳으로 모아 권력의 배후에서 친자본, 친기업 정책이 유지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코크 형제 중 동생은 5년 전 숨져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선거 기간 그의 캠페인에 자금을 지원하는 기업이나 재력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것도 예상 밖이었고 본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것은 더욱더 그랬다. 트럼프란 인물이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위험 요소를 많이 가졌기 때문에 기업이나 자본가들은 대부분 후원을 꺼렸다. 따라서 공화당의 돈줄은 그와 초반에 경쟁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나 텍사스의 ‘테드 쿠르즈’ 그리고 플로리다의 ‘마르코 루비오’처럼 일반적인 공화당 노선을 따르는 후보들에게 연결됐다. 당시 트럼프의 후원자들은 주로 트럼프와 함께 맨해튼에서 부동산 개발로 돈을 번 부동산개발업자들이나 호텔업자 또는 카지노 재벌들이었다. 전당대회 이후 트럼프가 공식적으로 공화당 후보로 정해지고 거의 본선거전에 임박해서도 공화당의 최대 정치 후원조직인 코크 네트워크는 트럼프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그의 독설을 비난했다.
2022년 11월 중간선거 직후 트럼프는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대통령 취임 이후 치러진 3번의 선거(2018년, 2020년, 2022년)에서 연거푸 패한 트럼프의 재출마 선언에 대해 공화당은 크게 우려했다. 특히 보수주의 권력을 원하는 재력가들이 당황했다. 트럼프식 정치는 그들이 원하는 공화당 정치가 아니었다. 그리고 특히 트럼프가 대통령 재임 시 추진한 각종 정책이 기업에 절대 유리하지 않았다. 코크 네트워크는 트럼프를 대신할 차기 공화당 후보를 물색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재출마 선언으로 그의 지지층은 순식간에 결집했다. 공화당은 다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의 당이 됐다.
지난해 9월 말 제2차 후보 토론회가 끝나고 코크 네트워크는 7명의 대선 후보(마이크 펜스, 론 드산티스, 크리스 크리스티, 니키 헤일리, 비벡 라마스와미, 팀 스콧, 아사 허친슨) 중에서 트럼프를 대체할 후보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10월 2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유대계 공화당위원회(RJC)의 콘퍼런스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가 돌연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경건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인디애나 주지사 출신인 그는 지난 2016년 트럼프가 바이블 벨트(기독교 우파)를 겨냥해 부통령 러닝 메이트로 영입한 인물이다. (트럼프 정부의 고위급 중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오랜 기간 코크 네트워크 가 적극 후원을 하면서 관리해 온 정치인이다. 펜스 부통령은 인디애나주에서 하원의원이 될 때부터, 그리고 그가 인디애나 주지사로 출마해 당선되기까지 늘 코크 네트워크가 후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는 2011년 캔자스주에서 연방 하원에 입성하자마자 하원 정보위원회로 들어가도록 코크 네트워크가 힘을 썼다. 트럼프는 코크 네트워크를 의식해 3선 의원에 불과한 마이크 폼페이오를 행정부의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임명했고 후에 국무장관으로 기용했다.)
11월 초순에 들어서 코크 네트워크는 니키 헤일리를 트럼프의 대안으로 정하고 ‘번영 행동을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Prosperity Action)’이란 정치 후원단체를 통해 지원을 시작했다. 4위나 5위에 머물던 니키 헤일리는 이 시점부터 급부상했다. 1월 15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트럼프의 독주가 확인되면서 니키 헤일리만 남고 모두 경선을 포기했다. 코크 네트워크의 전략은 니키 헤일리가 트럼프와 대결을 하면서,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진영의 중심이 되고 트럼프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연방 검찰이 기소한 4건의 재판을 감당하려면 트럼프에겐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하다. 선거 캠페인에 들어가는 액수 이상의 큰돈이다. 트럼프는 하루라도 빨리 공화당의 단독 후보가 되어 자신의 캠페인 비용을 공화당이 나서서 마련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지난달 24일 열린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다음날 미 언론들이 “코크 네트워크가 더 이상 니키 헤일리를 위해서 지출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을 때 트럼프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니키 헤일리는 3월 5일 ‘수퍼 화요일’까지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코크 네트워크의 니키 헤일리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청하기 위해 트럼프는 지난 1월 29일 코크 네트워크의 큰손들을 비밀리에 자신이 소유한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골프장으로 초대했다. 이때 코크 네트워크의 큰 손들은 트럼프로부터 정책적 확약을 받고 니키 헤일리 지원을 사우스캐롤라이나까지로 합의를 봤다. 이에 관련한 내용은 워싱턴 주재 중앙일보 특파원이 단독으로 보도해 세상에 알려졌다.)
니키 헤일리 노선은 건전한 보수 불씨
찰스 코크(左), 데이비드 코크(右)
사실 공화당 내 경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이미 공화당은 MAGA의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경쟁자는 트럼프 이후를 겨냥하거나 트럼프 견제 세력의 핵심이 되는 길밖에 없다. 니키 헤일리는 이미 후자 쪽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만약 트럼프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니키 헤일리가 공화당 유권자들에게 다시 한번 큰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다.
3월 5일 수퍼 화요일도 트럼프의 질주였다. 현재까지 치러진 25개 주에서 니키 헤일리는 워싱턴 DC와 버몬트주에서만 승리했다. 수퍼 화요일 다음 날 아침 니키 헤일리는 캠페인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공화당 후보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가 11월 선거에서 이기려면 자신을 지지한 공화당 내 30% 이상의 유권자를 포용해야 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트럼프에게 달렸다”고 했다.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수퍼 화요일 승리 연설을 한 트럼프는 이전과 달리 니키 헤일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는 단결을 원한다, 그것을 할 것이다, 그것은 매우 빨리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니키 헤일리는 오랫동안 공화당을 지배해 온 실용적이고, 국제적이고, 친 성장 보수주의 이념에 충실한 정치인이다. 트럼프의 외국인 혐오증, 고립주의, 포퓰리즘, 인종주의, 분열정치에 반대했지만 패배했다. 정치적으로 건전한 민주주의엔 도덕적으로 건전한 보수주의가 꼭 필요하다. 미국 보수주의 정치가 확대되고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는 그것이 사라졌다. 트럼프가 사라진다면 니키 헤일리의 유산이 분명히 건전한 보수주의의 불씨로서 유의미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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