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항쟁 ‘시민군 버스’ 그대로…탄핵 반대 집회 막으러 내달렸다 – 한겨레

지난 15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시민은 도청으로’, ‘시민이여 일어서자! 산자여 따르라’가 적힌 투박한 현수막을 건 낡은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12·3 내란사태 이후 서울 여의도, 한남동, 광화문 등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들 곁을 지킨 ‘시민항쟁버스’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 들이닥친다는 소식에, 이를 막으려 광주로 향하는 시민들을 따라 버스도 내달렸다. 광주에 들어선 버스의 의미는 한층 컸다. 시민들은 5·18 광주항쟁의 ‘시민군 버스’를 떠올리며, “과거와 현재가 마주보는 것 같아 먹먹하다”는 반응을 전했다.
시민항쟁버스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고 있는 ‘레트로 마니아’ 민동혁(28)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 대표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민 대표는 27일 한겨레에 “그저 오래된 자동차, 오래된 건물과 물건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안정적인 버스 운영을 위해 ‘대표’ 직함을 달게 됐지만, 민 대표는 내란 사태 이전까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느 시민처럼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간절했다. “어릴 때부터 오래된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시대적 맥락을 찾게 되고 역사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 만큼은 분명했습니다.”
그 순간, 민 대표는 과거 정비를 맡았던 ‘레트로 버스’를 떠올렸다. 시대극 드라마, 각종 광고 촬영에 쓰여 업계에선 이름 난 버스다. 함께 정비 일을 하는 동료와 사비를 들여 버스를 빌렸다. 민 대표는 “과거 민주화의 주역이 시민이었듯, 2024년 12월 집회에 나온 시민들도 ‘내가 역사의 현장 한 가운데 있는 주인공’이란 느낌을 받길 바랐다”고 했다. 지난해 12월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모인 국회 앞으로 향했다. 시민항쟁버스의 첫 운행이었다.
시민항쟁버스는 바람대로 내란 이후 석달 가까이 국회 앞, 광화문, 한남동, 금남로 등 시민이 모인 역사의 현장 곳곳을 누볐다. 시민들은 “영화에서 본 버스”라고 반기며 안팎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후원을 하고 싶다는 이들도 잇따르며, 버스 대여에 돈을 보탰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버스에서 추위를 피했다. 시민 집회에서 연대의 상징이 된 ‘난방버스’의 시초가 된 것이다.
내란 이후 버스의 행로가 아름답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극우 성향 누리꾼들이 버스를 대여해준 차주에게 악성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버스를 둘러싸고 위협하기도 했다. 버스를 홀로 운영하기 버거워졌다. 민 대표가 최근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를 꾸리게 된 배경이다. 그는 “대여 문제, 신변 문제 등으로 더는 개인 차원에서 시민항쟁버스를 운영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며 “평소 알고 지내던 레트로 차량 전문가들과 후원자, 온라인을 통해 모집한 시민 등 12명이 모여 지난 14일 운영위를 출범했다”고 했다. 이들은 함께 버스를 대여하고 관리할 계획이다.
시민항쟁버스의 목표는 ‘항쟁이 필요 없는 세상’에 도착해 운행 중단을 알리는 것이다. 민 대표는 “그를 위해선 윤 대통령 탄핵과 처벌, 내란에 동조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버스를 타고 누빈 현장에서 새로운 바람도 생겼다. “응원봉 물결이 버스를 둘러쌌던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그 광경이 민주주의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 같았거든요. 탄핵 이후의 세상도 지금의 광장처럼 다양한 목소리가 오가고, 다른 목소리도 존중받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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