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주가지수 4000시대도 가능하다.”
소액주주운동을 지원하는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의 윤태준(38) 연구소장은 12·3 내란사태 충격까지 겹치며 빈사상태에 빠진 한국 증시를 살리는 길에 대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 외에는 없다”면서 “소액주주의 90% 이상이 법 개정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지난 40~50년간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기업 회장이 마음대로 하는 ‘최대주주 자본주의’였다”면서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희생을 당연시해온 풍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액주주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소송남발 등을 이유로 반대입장을 고수한다. 정부여당은 재계의 눈치를 보다가 분할·합병 등에 국한한 ‘핀셋 규제’를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을 대안으로 내놨다.
윤 소장은 재계가 소송남발과 경영권 침해 등을 이유로 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침소봉대에 불과하다”면서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자본시장법 개정도 재계가 (규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나 꼼수를 찾으면 무력화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윤 소장과는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대면 인터뷰를 가졌고, 19일 추가로 전화통화를 했다.
윤 소장은 지난 8월 이후 4개월여 동안 상법개정 관련 국회 토론회에만 9차례 참석했다. 그동안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기업이나 경제단체의 주장은 과할 정도로 많이 소개됐지만, 정작 1400만명에 달하는 일반주주와 소액주주의 입장을 듣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는데, 윤 소장이 대변자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상법 개정을 주도하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소액주주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그를 적임자로 소개한 배경이다.
윤 소장은 소액주주가 반대하는 두산의 사업구조 재편안을 막기 위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직접 플래카드를 펼치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개인 자격으로 두산 소액주주연대 운영진으로도 활동한다. 이 때문에 액트를 소액주주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또 밤늦은 시간까지 전화로 소액주주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때는 스스로 사회운동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윤 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대에서 석·박사 학위(재무 전공)를 받았다. 이후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일하다가, 지난 7월 액트의 설립자인 이상목 대표의 권유로 합류했다. 재벌에서 일하다가, 재벌의 횡포에 맞서는 소액주주들 돕고 있는 게 흥미롭다.
■1400만 소액주주의 ‘대변자’
―액트의 활동을 소개해달라.
“올해 3월 주총시즌에 41개 상장사에서 주주제안 안건이 다뤄졌는데, 그중에서 13곳이 액트를 통해 이뤄졌다. 또 액트는 회사의 주총 안건이 소액주주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를 공시해서, 주주들의 반대표를 모은다. 지난 주총시즌에 회사를 제외한 제3자가 대리행사를 권유한 상장사가 57개였는데, 그중 30곳에서 주주들이 액트에 의결권을 맡겼다. 내년에는 최소 80곳으로 늘어날 것이다.”
―의결권을 대리행사한 결과는?
“7개 상장사에서 승리 또는 부분승리를 거두었다. 유통·건설업체인 베뉴지에서는 소액주주가 추천한 상근감사가 선임됐다. 건설용 거푸집 제조업체인 삼목에스폼에서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가 뽑혔다. 창업주 가족 간에 경영권 분쟁 중인 한미약품 주총에서도 소액주주가 지지한 임종운 전 사장 형제가 이사로 선임되어, OCI홀딩스와의 통합이 무산됐다.”
―재벌 대기업에서 성과는 없나?
“대기업에서도 성과를 내고 싶은데, 솔직히 쉽지 않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밥캣 지분을 로보틱스에 넘기는 분할·합병을 포기한 게 첫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반대하고, 최근 정치상황으로 인해 두산 주가가 급락한 탓도 있지만, 액트가 4~5개월 동안 끈질기게 반대한 결과이다.”
■한국은 ‘최대주주 자본주의’
―12·3 내란사태 이후 주가하락으로 시가총액이 한때 150조원 가까이 사라졌다. 요즘 투자자들의 심정은?
“너무 낙담하고 있다. 미국 증시로 옮겨가려 해도 환율급등(원화가치 하락)으로 쉽지 않다. 투자금을 빼고 싶어도, 전체 거시경제 상황이 안좋아 마땅히 갈 곳도 없다.”
―빈사상태인 한국 증시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은?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상법 개정밖에 없다.”
―그 이유는?
“상법개정으로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어, 기업가치가 오르면, 주가는 무조건 오른다. 한국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고 최대주주 자본주의다. 회장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지난 40~50년간 지배주주 이익을 위해서 소액주주의 희생을 당연시하면서, 지배주주-일반주주 간 비례적 이익을 지키지 않아온 풍조를 해결하려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 두산 구조재편만 봐도 에너빌리티와 밥캣의 일반주주들은 이득될 게 전혀 없다. 로보틱스 주식을 많이 가진 두산 총수일가(로보틱스의 최대주주인 ㈜두산의 최대주주가 총수일가)에게만 이득이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법개정으로) 주식시장의 공정성이 보장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 주가지수가 4000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한국 기업을 확실히 믿을 만하다는 인식 변화가 이뤄지면 40~50% 오르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댓글로 보면, 법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1400만 주식투자자 중에서 찬성론은 어느 정도인가?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금융투자소득세(주식과 채권 등의 투자로 발생한 소득에 물리는 세금) 폐지 찬성률보다 상법개정 찬성률이 더 높은 것 같다. 90%를 넘는다고 확신한다.”
■정부 핀셋규제, 재계 꼼수에 무기력
―정부여당은 상법개정에 부정적이다.
“이해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았나? 주주 가치를 지키는 것은 보수의 어젠다이다. 진보의 어젠다는 주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국의 보수는 상법 개정에 반대할 수 있나?”
―액트는 정부여당이 대안으로 내놓은 자본시장법 개정 방안에 반대하는데.
“상법 개정이 어렵다면, 현실적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안을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상장사가 합병분할 등을 추진할 때 이사는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선언적 조항은 결국 안해도 그만이라는 말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관련해 규율 범위를 합병분할 등으로 한정하는 이른바 ‘핀셋 규제’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한국 자본주의 역사는 법 규제를 빠져나가는 편법이나 꼼수로 소액주주의 부를 지배주주에게 이전시키는 과정이었다. 합병·분할 등만 규제하면, 그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꼼수를 찾아낸다. 옛 직장인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를 지원하는 일을 했는데, 부끄럽지만 그 주된 내용이 회피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핀셋 규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드시 상법에 일반적인 규율 조항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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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송남발·경영권 위협’ 과장
―재계는 소송남발 우려를 이유로 상법개정에 반대한다.
“너무 화가 난다. 침소봉대다. 작은 회사를 상대로는 주주들도 단결이 많이 이뤄진다. 하지만 대기업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소송비용만 수천만원에 달하고, 상위 로펌에 의뢰하는 것도 비싼 변호사 비용 때문에 힘들다. 반면 대기업은 최상급 로펌의 변호사를 많이 붙인다. 소액주주로서는 승소 가능성도 희박하고, 패소하면 비용도 물어줘야 한다. 소송기간도 3~4년이 걸린다. 개인이 어떻게 소송을 하겠는가.”
―법원에서 판례로 인정하고 있는 ‘경영판단의 원칙’(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하고 권한 내의 행위를 하였다면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을 법에 명시하는 방안은?
“상법 개정을 전제로 찬성한다.”
―외국 투기펀드의 경영권 위협도 제기한다. 펀드의 투자목적이 경제적 이득이지 경영권은 아니라는 것은 자본시장의 상식 아닌가?
“(경영권 위협론은) 말도 안되는 얘기다.”
―대법원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의견서에서 상법개정 취지에 공감했다. 또 미국 델라웨어주가 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그러자 보수언론이 대법원까지 비판했다.
“재계가 해외 입법 사례가 없다는 거짓 보도자료를 내면, 언론이 받아쓰고 있다. 재계는 미국 모범회사법 8.30조의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규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다음 8.31조항을 보면, ‘이사가 회사와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를 위반해서 손해를 끼치면, 주주로부터 직접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OECD 기업지배구조 원칙도 동일하다.”
■고려아연·영풍·MBK는 세 얼간이
―고려아연은 법 개정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액트는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지배주주)과 영풍-MBK파트너스를 모두 비판했는데?
“소액주주들은 3월 정기주총 때 고려아연을 도왔다. 이미 영업이익의 80%를 배당하는데, 영풍이 150%를 배당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주주환원율(배당액과 자사주 소각액의 합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금융회사와 지주사를 제외하면 대기업 중에서 상위 5위 안에 든다. 기업실적도 괜찮다. 기업지배구조도 1, 2등은 아니지만, 상위 20% 안에 든다. 그런데 주주공모가 아닌 일반공모 형식의 유상증자 추진으로 투자자를 배신했다. 우군인 소액주주를 저버린 고려아연은 얼간이다.”
―영풍과 MBK는 왜 얼간이인가?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PBR(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을 보면, 영풍이 이마트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두 회사 모두 PBR이 0.2에도 못미친다. 영풍은 경영실적도 안좋고, 석포제련소의 환경문제 등 ESG경영도 엉망이다. 부동산도 불필요하게 많이 갖고 있다. 그런데도 영풍은 낙제기업인 주제에, 자기보다 잘하는 고려아연을 비난한다. 그래서 두 번째 얼간이다. 앞으로 영풍과 이마트를 상대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주주제안을 할 계획이다. MBK가 지배구조 개선 목적으로 고려아연에 들어갔다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영풍의 지배주주 일가가 고려아연 지분을 많이 갖고 있어서, 경영권을 뺏기 쉽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경영권을 먹으면, 이익을 많이 남기고 팔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목적이라면, 오히려 영풍에 들어가는 게 맞다. MBK는 무늬만 행동주의펀드이다.”
■경영권 방어장치는 주가하락 초래
―재계는 상법 개정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포이즌필(적대적 M&A가 시도될 때 기존 주주에게만 싼값으로 신주인수권 부여)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의 도입을 요구한다.
“경영권 방어장치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에 부정적이고, 주가하락을 초래한다는 것은 전세계 많은 논문과 사례로 입증됐다. 한국에서만 이를 무시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경영진이 잘못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일할 유인이 없다.”
―행동주의펀드는 주주가치 제고나 기업구조개선에 기여한다. 하지만 고려아연 사례가 보여주듯 문제점도 있다. 재계도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공격한다.
“비판받을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분기나 연도별로 수익률 결산시기가 되면,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털고 나와야 한다.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에, 돈을 댄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지배구조 개선을 하다가 만다. 행동주의펀드는 ‘금융쟁이들’이다. 공장을 팔고, 직원을 줄이는 비용 효율화를 통해 돈 잘 버는 회사로 재편해서 비싸게 파는 것은 잘한다. 그러나 산업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진다. 특히 기술집약적 회사의 장기생존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순기능과 역기능의 비중을 보면, 8대2나 7대3으로 순기능이 크다.”
■상법 개정 확률 80% 이상
―12·3 내란사태로 인해 국회 상법개정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 상법개정에 실패한다면, 증시에 미칠 영향은?
“너무 큰 악재가 될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되는 원인은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투자금액이 한국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 작기 때문이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은 늘 똑같다. 한국 기업은 언제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의사결정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당은 연내 상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당론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뒤집은 전력이 있다. 상법 개정은 믿을 수 있나?
“상법 개정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당을 믿어서가 아니다. 금투세는 조세 정의 측면에서 필요하고, 전통적인 지지층에서도 찬성이 많았지만, 전반적인 여론이 너무 안 좋았다. 반면 상법 개정은 취지에 반대하기 어렵고, 야당 지지층도 찬성하는 데다, 여론도 우호적이다.”
―상법개정 가능성을 확률로 말한다면.
“8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액트를 포함해서 많은 전문가가 바라는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상법 개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횡령·배임 대주주 의결권 제한 필요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외에도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 등과 같은 지배구조 개선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 어떤 내용이 추가되어야 하나?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횡령·배임 등의 범죄행위로 공소가 제기되면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 현재는 금융사에만 적용하고 있다. 이강일 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에는 3% 제한 방안이 담겨 있다. 증시에서 거래 중지 종목이 100개가 넘는데, 대부분은 경영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최대주주나 경영자의 횡령·배임 때문이다. 주주총회 의장 문제도 너무 심각하다. 소액주주가 표를 많이 모아 주총 표결에서 이겼는데도, 회사가 뒤늦게 주주 자격을 트집잡아 결과를 뒤집는 일이 너무 많다. 막강한 권한을 쥔 의장이 회사의 위법행위를 눈감기 때문이다. 소액주주가 일정 지분 이상을 모으면, 법원에 주총 의장 선임을 요청할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자동차부품회사인 캐스텍코리아와 와이엠 임시주총에서도 소액주주들이 이사 선임 표결에서 이겼는데도, 결과가 뒤집혔다.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김서연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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