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 캠핑카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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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로 고친 벤츠 엔진
 스타트를 아반떼로 시작한 우린, 이후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 캠퍼밴(승합 차를 개조한 차량)으로 4일간 925km 달렸다. 가는 길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은 적도 있었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계획했던 곳까지 못 가고 급하게 남의 집 주차장에서 ‘도둑 타박’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자잘한 우여곡절은 우리의 자동차 여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시드니에서, 최대 6명이 잘 수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싱크대와 테이블이 겸비된 대형 모터홈 벤츠 캠핑카를 1달러에 빌리게 되었다. 이 캠핑카를 이용해 멜버른까지 가는데 허용된 3일 동안 약 1,000km의 거리를 이동할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원래라면 하루에 100$는 우습게 넘기는 금액의 캠핑카를 1$에 몰아보다니 꿈만 같았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둘째 날에 차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주유소에서 주유를 마치고 옆에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이동하려던 순간, 계기판에 엔진경고등이 뜨면서 갑자기 차가 심하게 떨리더니 멈춰버렸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간편하게 보험사에 긴급출동을 부르면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여기는 호주이고 심지어 우린 어떤 보험도 들지 않았기에 그로 인해 발생된 비용과 문제의 책임을 고스란히 운전자가 감수해야 했다. 당장 내일까지 캠핑카를 반납해야 했기에 정인이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보험사를 부르자고 했지만 난 이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해 보고 싶었다.

 보닛도 열어보고 차량의 하부도 점검하였다. 한국에서 자동차 정비를 배울 때에도 이런 벤츠 캠핑카를 다뤄보진 않았기에 내가 고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가 이걸 고친다면? 그래서 세계여행 전 배워둔 정비학교에서의 시간이 빛을 발할 수 있다면? 그 희열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2시간은 훌쩍 넘긴 채 원인을 찾지 못해 시름하고 있었다. 도무지 내 힘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정비 학교에서 연을 맺은 선생님께 영상 통화를 걸어 차의 상태를 보여주었고 감사하게도 몇 가지 점검하고 조치할 사항을 알려주셨다. 

 퓨즈 박스를 열고 ECU를 초기화해보기 위해선 장비가 필요했는데 별도의 도구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차 안에 있던 포크를 이용해 어렵게 그리고 절실하게 차를 정비해 나갔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항상 들어맞진 않지만 그날만큼은 참이었다. 노력 끝에 엔진 부조가 잡히고 엔진 경
고등이 사라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됐다!! 내가 포크 하나로 벤츠를 고쳤다~!”

 이 경험은 압축된 스프링이 강력한 탄성으로 완전하게 펴지듯 움츠렸던 내가 온전히 깨어나게 해주었고 우린 그 자신감으로 호주에서 시작해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를 넘어 유럽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가장 ‘나’다움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길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과 같다. 그 길은 때론 막막하고 험난하고 아득해서 찾는 데 도무지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은 좌절감마저 든다. 바로 그럴 때, 나의 옆에 있는 사람이 묵묵히 응원해 준다면, 충분히 알아갈 수 있게 옅은 미소로 기다려 준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1달러’에도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네가 그래준 것처럼.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이자 15년 동안 한사람과 연애하는 ‘프로 헤맴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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