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18 일 년 치 휴가를 몰아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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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의 아주 비싼 일탈
9월 추석 연휴에 맞춰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11년 차 회사원에 접어드니, 여름휴가는 늦게 갈수록 승자라는 생각이 든다. 휴가는 다녀온 뒤 한 달이면 금세 잊게 되기 때문.
 
연차 하루하루가 아까운 회사원은 평일 퇴근 후 출발하는 밤 12시 비행기를 선택했다. 캄캄한 새벽부터 짐 한 더미를 들고 회사에 출근해 9-6 회사원으로서의 일정을 소화해 내고 다시 캄캄한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쯤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무리 설레는 휴가 가는 길이라지만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긴 했다.

우연히 알고리즘에 뜬 유튜브 영상 하나에 푹 빠져 고르게 된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시간도, 체력도 부족한 30대 회사원 부부에게는 그간의 다른 여행지 보다 준비 과정이 몇 배는 어려웠던 낯선 여행지. 생전 처음 몰아보는 캠핑카 예약부터, 거리 이동을 계산해 골라야 하는 캠핑장 선정까지. 과정 또한 우리에겐 새로운 미션 깨기와 같았다.  

약 9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거대한 3인용 캠핑카를 몰고 낯선 뉴질랜드 땅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됐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운전석 위치, 도로 방향, 집 없이 캠핑카에서 먹고 자는 일상들. 무모하기도, 낯설기도, 설레기도 한 우리의 일탈이자 휴가는 말 그대로 서울에서의 탈출과도 같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대자연의 영험한 풍경들과 거대한 설산 앞 아주 사소해지는 나의 고민들까지. 캠핑장 곳곳에서 마주한 다양한 국적, 여러 모습의 가족들과 나이 든 캠퍼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보기도 했다.

또래에 비해 많은 걸 경험하고 살았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눈앞에 놓여진 무한한 생소함과 새로움을 깨닫고. 나에게 어떠한 한계와 기준을 둘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유한한 자연을 더 즐기며 살겠노라고 겸손해 졌던 시간. 자연이야말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기에.

회사원이 1년에 1번 돈과 시간을 몰빵해서 가는 길고 비싼 여행 중 하나였지만, 이번 캠핑카 여행은 다시 돌이켜보고 사진을 곱씹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아련하다. 사진, 영상 하나를 볼 때마다 내가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과 속으로 삼켜낸 작은 생각들과 다짐들이 떠올라서.

그 사소했던 내 감정들과 기억들이 쌓이면 또 하나의 내가 되고 몇년 뒤 그리고 40대. 50대의 또 달라진 나를 만들어 낼 모래성이 되겠지. 바람이 날리면 날아가기도 하고 누가 툭 치면 무너지기도 하겠지만 한알 한알 쌓이다 보면 언젠가 단단히 나를 받치고 있을 모래 언덕이 되리라 믿는다.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사막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 누구의 휴일도 안 소중한 것이 있겠냐마는. 평소 내가 누구인지 미처 모르고 살기 바쁜 회사원의 휴가는 이래서 더욱 소중하고 아련하고 저릿하다. 내년 여름 휴가 때까지는 또 내 사진첩만 수십번 들락 거릴 것이다.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영상] – 유튜브 채널 놀쀼
https://youtu.be/xY_SAjukV4o?si=VcHIJ7wt6p__pu0F
평일엔 서울 속 회사원. 주말엔 도시 밖으로 자유롭게 방랑하는. 11년차 보헤미안 회사원의 일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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