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로 밀린 환경 프로그램·매일 밤 카지노…그린보트엔 ‘그린’이 없었다 – 한겨레21

그린보트 내 카지노 모습. 매일 밤 많은 탑승객이 이곳을 찾는다. 강석찬 제공
“여기 인문학 강연이 되게 좋아요. 보통 200~300명씩 오니까 30분 전에는 가서 미리 자리를 잡으셔야 할 거예요.” 강석찬(27)씨가 부산항에서 그린보트에 처음 올랐을 때 가이드가 해준 얘기다. 강씨는 그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환경이 아니라 인문학?’
 
환경재단이 운영한 제15회 그린보트가 2025년 1월16일 출항해 23일까지 항해를 마치고 돌아왔다. 한겨레21은 2024년 12월 김한민 작가가 쓴 ‘온실가스 내뿜으며 생태 풍월, 환경재단의 호화 뱃놀이'(제1542호 참조)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을 계기로 그린보트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논란이 촉발됐고,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와 가수 요조 등 일부 연사가 탑승을 철회했다. 환경재단은 논란이 되자 입장문을 내고 “평화와 환경 같은 무거운 주제가 나의 문제로 실체화 및 구체화되려면 지식과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며 “거대한 자연 속에서 만끽한 다양한 체험은 측정할 수 없는 가치가 되어 공동체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뒤로 그린보트의 운영은 환경재단의 설명대로 운영됐을까. 한겨레21은 제15회 그린보트 탑승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보트에서 이뤄진 강연과 체험 활동 내용, 기항지에서의 프로그램 등을 입수해 얼마나 그린보트가 ‘그린’했는지 따져봤다.
2025년 3월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강씨는 매일 자신이 참여한 강연과 체험 프로그램 활동을 브런치스토리에 기록했다고 했다. 많을 땐 하루에 5개의 강연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연구원 인턴 생활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친구와 함께 그린보트에 탔다. “평소에 환경적인 부분을 너무 간과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린보트를 타면 깨달음이나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계기가 될 줄 알았어요.” 그린보트 출항 전 논란이 일고 연사 중 일부가 탑승 철회를 했지만 강씨는 탑승을 철회하진 않았다. 결국엔 환경재단에서 잘 운영하면 될 문제라 생각했다. 또한 직접 경험해본 뒤 판단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환경 관련한 강연은 거의 없었고 체험 활동도 부실했다”고 했다. 실제 한겨레21이 확보한 전체 강연 목록 40개 가운데 환경 관련 강연은 절반이 안 되는 15개였다. 게다가 15개 중엔 ‘친환경을 위한 아이디어 워크숍’이나 ‘기후위기 대응 카드뉴스 챌린지’ 등의 간단한 행사도 포함됐다.
 
특히 환경 관련 강연은 가장자리로 밀렸다. 강연과 체험 프로그램은 매일 6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는데,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간인 지오베 대극장에선 주로 환경과 관련 없는 유명 연사의 강연이 열렸다. 그러면서 환경 체험 프로그램은 동시간대에 작은 규모의 공간에서 열렸다. 이를테면 그린보트 첫째 날 처음 진행된 유홍준 교수의 한국 미술사 강의는 지오베 대극장에서 열렸고 수백 명이 참여했다. 동시간대에 다른 장소에선 ‘친환경을 위한 아이디어 워크숍’이 열렸는데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워크숍에선 쓰레기 재활용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같은 시간대에 환경 프로그램을 넣어두니까 결국 유명한 연사 쪽으로 가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예요. 적극적인 방식으로 하려면 메인 시간대에 핵심적인 (환경) 프로그램을 넣어놨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환경 관련 강연과 프로그램을 주로 들었다는 탑승객 ㄱ씨도 “환경 강연에 참여하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환경 관련 강연은 대부분 장소도 작은 곳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강연이 아닌 체험 프로그램은 어땠을까. 환경재단은 8개의 캠페인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환경 보드게임과 채식 프로그램, 환경 관련 도서를 대여하는 그린대여소, 환경 문제를 푸는 도전 골든벨 등이다. 강씨는 이런 체험 프로그램들도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em>“그린대여소는 발포 세정제와 고체치약을 나눠주고 환경 관련 도서/다회용기를 나눠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부스가 작아 사람들이 줄을 서야 했다. 넘치는 인원을 빠르게 쳐내기 위해 스태프들에게 제대로 된 환경 관련 설명을 듣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스에 들러 1~2분간 둘러보는 정도였다. 보드게임도 마찬가지였다. 환경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이 마지막에 끼워넣은 수준에 불과했다.”(강씨의 브런치스토리 글 중에서)</em>
“환경 관련 도서를 나눠주고 고체치약을 나눠주는 정도는 웬만한 회사에서도 할 수 있는 수준이잖아요. 스태프들도 그냥 나눠주는 게 전부예요. 차라리 전문가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씨가 말했다.
 
기항지에서의 프로그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탑승객들은 기항지에서 자유여행도 가능했지만, 환경재단이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한겨레21이 확보한 그린보트 기항지 프로그램 가이드북을 보면, 환경재단은 기항지 세 곳(대만 지룽, 일본 오키나와·사세보) 등에서 22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환경 관련 프로그램은 한 개도 없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그 느낌 그대로’ ‘오키나와 속 왕좌의 게임’ 등 일반적인 관광 프로그램이 대다수였다. 자연경관을 보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대만의 예류지질공원이나 오키나와의 치넨미사키 해안공원 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이다.
환경재단이 운영한 그린보트 ‘코스타세레나'호. 11만4천t급 초대형 선박이다. 강석찬 제공
 
ㄱ씨도 환경재단에서 운영하는 기항지 프로그램에 전부 참여했지만 환경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가이드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환경재단 가이드가 아니라 여행사 가이드 같더라고요. 같이 다녀보면 ‘여기가 유명한 사진 스폿이다’ ‘여기서 유명한 음식은 무엇이다’ 이런 얘기밖에 안 해요. 그린을 기대하고 왔던 사람으로서 당연히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강씨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기항지에서 여행을 마치고 그린보트로 복귀할 때였다. “복귀할 때 보면 모두가 양손에 기념품을 가득 들고 서 있는 거예요. 온갖 포장지로 감싼 기념품을요.” 환경재단은 그린보트 안에서 일회용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텀블러를 가져오도록 하고, 없는 이들에게는 빌려줬다. 그러나 기항지에 들를 때면 일회용 쓰레기가 그린보트로 밀려왔다. “사전에 텀블러를 챙기라는 것과 배 안에서는 일회용품을 안 준다는 안내가 전부였어요. 물론 탑승객들이 기념품을 갖고 들어오는 걸 제재할 순 없죠. 다만 나가기 전에 최소한 일회용품 사용 자제를 부탁할 수 있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요.” 강씨가 덧붙였다.
 
강씨가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린보트 안의 분위기였다. “매일 술판이 벌어지고 댄스파티가 열려요. 카지노가 열리고요. 매일 밤 방송으로 빙고를 조장하는 내용이 나와요. 여기까지 오는 것만 해도 저는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웬만하면 (보트 안에서) 돈을 안 썼거든요. 그런데 남들은 다 술 먹고 카지노 하고 즐기다보니 저런 게 일반적인 건가, 내가 여기 온 취지나 생각이 되게 잘못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죠.”
환경재단은 크루즈를 빌려서 운영한다. 배 안에서 이뤄지는 강연이나 프로그램은 환경재단 책임이지만, 배 안의 카지노와 바 같은 시설은 선사에서 운영한다. 이런 이중적인 구조가 강씨로 하여금 공허감을 느끼게 한 것으로 보인다.
ㄱ씨는 식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린보트에선 일주일 여정 중 한 번 채식을 제공했고, 나머지는 모두 뷔페식으로 음식을 제공했다. “얼마나 많은 음식이 낭비됐는지 상상도 되지 않아요. 채식데이 때도 선상신문에 조그마한 글씨로 한 사람이 채식을 하면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정도만 나와 있지, 채식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홍보는 부족했던 거 같습니다.”
환경재단은 그린보트 탑승객 1명당 탄소배출량은 517㎏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항공기로 이동하고, 숙박까지 했다면 1명당 977㎏의 탄소를 배출했을 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517㎏의 탄소배출량도 적은 양이 아니다. 한 번 배달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탄소량이 3.4㎏이기에, 약 150번의 배달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결국 남는 건 왜 크루즈일 수밖에 없느냐는 질문이다.
 
환경재단은 크루즈라는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환경 문제에 문외한이거나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상황에 맞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허들이 낮은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린보트 운영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방글라데시에서 약 2만 그루의 맹그로브 성숙림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씨는 “왜 크루즈여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못 느꼈다”고 했다. “이동해야 하는데 비행기도 안 되고 기차도 어려우니까 크루즈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봐요. 다양한 사람들이 이동해야 하면 큰 여객선이나 쾌속선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거 같고요. 또 이전에 그린보트 사례를 보면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 도움을 주고 원조 활동도 한 건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여행만 하면서 규모가 축소된 것 같아요.”
김한민 작가는 더 큰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em>“그린보트의 폐해는, 몇만t의 탄소, 유해물질, 쓰레기 배출을 훌쩍 뛰어넘는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바로 ‘크루즈=친환경'이라는 인식을 대중에 널리 심는 것입니다. 크루즈업계 스스로 그런 녹색 이미지를 만들려면, 수백억 홍보비와 거짓말로도 부족할 겁니다. (…)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은 대체 어찌 ‘상쇄’하실 건가요?”(페이스북 발췌)</em>
환경재단은 계속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인지를 묻는 질문에 “15회 그린보트 종료 이후 프로그램 방향성과 운영 방식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그 본질적 가치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며 “전문가, 참가자, 환경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형식과 운영방식을 포함한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그린보트 어땠어?”
일본 사세보항에서 크루즈를 타면서 강씨가 함께 탄 친구에게 물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친구가 되물었다. “이게 그린보트인가?”
강씨가 답했다. “그린보트는 그린하지 않았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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