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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영화는 숨이 길다
타이틀: 라쇼몽(羅生門, In The Woods, 1950)
감독 : 구로사와 아키라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제작국 : 일본
주연: 미후네 도시로, 쿄 마치코
■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
사람의 눈은 사실(Fact)을 제대로 봤을까. 사람의 기억은 사실대로만 구성이 될까. 사람의 눈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 걸까. 이기심으로 뭉쳐진 눈은 의외로 욕망에 그을려 벌겋다. 닳고 닳아 부실하고 허술하기까지 하다. 그러하니 피사체의 궤적을 추적해 뇌에 저장된 사람의 기억도 객관적이지 못하다. 팩트가 휘청거리니 팩트체크는 언감생심이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도 자신의 이익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이해관계로 해석한다. 기억의 주관성은 이렇게 전개된다.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이를 빗대어 ‘라쇼몽 효과’라고 한다.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연출한 흑백영화 <라쇼몽 羅生門>에서 유래한 용어다.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는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억을 재편집하는 현상이다.
영화 <라쇼몽>의 줄거리. 사무라이 남편과 아내가 산길을 가고 있었는데 산적을 만나게 된다. 산적은 사무라이 아내의 미모에 혹하여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사무라이를 포박해놓고 아내를 겁탈한다. 이후 숲속을 지나던 나무꾼이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사무라이 시신을 발견하고 관아에 신고를 한다. 잡혀 온 산적 그리고 사무라이의 아내, 무당의 몸을 통해 빙의한 사무라이는 관아의 판관 앞에서 각기 서로 다른 진술을 한다.
산적은 말한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사무라이 앞에서 그녀를 범한 것은 사실이다. 범행 후 혼자 떠나려 할 때 여자가 매달리며 ‘나의 치욕을 아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죽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더라. 그래서 묶어놓은 사무라이를 풀어주고 23번이나 검을 섞으며 남자답게 결투를 했다. 결국 남편을 죽이고 돌아와 보니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무라이 아내는 말한다. “나를 범했던 산적이 떠난 후 묶여있는 남편에게 안겨 울었다.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달라졌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혐오의 눈빛이 쏟아졌다. 제발 그 눈빛을 거둬달라고 애원했다. 단도를 들고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까지 했다. 큰 충격에 단도를 휘둘러 남편을 죽인 것 같다. 연못에 투신도 해보았으나 자살에 실패하고 이렇게 관아를 찾았다. 나와 같은 힘없고 불쌍한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은 사무라이는 빙의된 무당의 입을 통해 말한다. “아내를 범한 산적은 아내를 꼬드겼다. 이렇게 된 바에야 나와 같이 사는 게 어떻겠냐고. 아내는 전에 없이 몽롱한 표정으로 산적에게 말하더라. ‘당신이 원하는 곳, 어디로든 나를 데려가 주세요’ 산적과 함께 떠나려던 아내는 ‘저 사람이 살아있는 한 당신과 떠날 수 없으니 저 사람을 죽여 달라’ 이 말에 충격받은 산적은 식겁해 아내를 땅바닥에 팽개치며 이 여자를 죽일지 말지 내게 정하라 했다. 그 와중에 아내는 도망을 쳤고 빈손으로 돌아온 산적은 나를 묶은 포승줄을 풀어주고 떠났다. 내 못난 처지가 수치심으로 밀려왔다. 사무라이의 자존을 지키려 아내의 단도로 자결했다. 얼마 후 누군가 다가와 내 가슴에 꽂힌 단도를 빼갔다.”
■ 도대체 진실은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관아 마당에서 재판을 지켜본 관중들. 그들 중 한 명인 나무꾼의 진술은 전혀 다르다. 나무꾼은 제3의 장소 라쇼몽(羅生門)에서 떠돌이 승려와 평민에게 목격자로서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세 사람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난 연루되고 싶지 않아 관아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숲 속에서 이들을 몰래 지켜보았다. 산적은 우는 여자 앞에서 자기랑 같이 살면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하더라. 사무라이 아내는 외쳤지. ‘내가 어찌 대답을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단도를 들고 남편에게 달려가 포승줄을 풀어주고 남편과 산적의 중간에 서서 서럽게 울더라. 산적은 눈치를 채고 결투를 벌여 여자를 얻으려 했지만 사무라이는 산적에게 이런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순 없다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아내더러 어찌 자결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산적도 이내 갈등을 하다가 길을 떠나려 했다. 이때 여자는 실성한 듯 두 남자를 몰아 세웠다. 먼저 남편에게 일갈했다. ‘네가 진정 내 남편이라면 왜 산적을 죽이지 않는가. 그 후에야 넌 나에게 자결하라고 할 자격이 있다’ 이번엔 산적에게 외쳤다. ‘네가 유명하다는 그 산적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너라면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나를 탈출시켜줄 거라 기대했다. 아마 널 위해 뭐라도 했을 거다. 하지만 너도 결국은 내 남편처럼 하찮구나. 흥! 기억해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받는다’ 이 말에 홀린 듯 산적과 사무라이는 결투를 시작했지. 남자답게 23번이나 진검 승부를 했다는 그들의 싸움 모습은 참으로 찌질했다. 두 마리의 개들이 물고 뜯는 것 같았지. 어쩌다가 겨우 승리하게 된 산적은 결국 사무라이를 죽이고 그 사이 여자는 도망을 쳤다.”
제3자인 나무꾼의 목격담 또한 일방적인 주장으로 가득 차 허망하다. 나무꾼도 진주가 박힌 값 비싼 여자의 단도를 훔친 상황 개입자이기에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겪고 목도한 네 사람. 각자의 진술이 모두 다른 것은 생사가 갈리는 사건을 두고 서로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진실은 찾을 수 있는 것인가.
■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 한다
산적의 경우 직접적으로 살인죄를 저지른 장본인이니 자신의 죄를 가볍게 보이기 위해 정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 진술했다. 죽은 사무라이는 비겁했던 행동과 결국 아내를 버린 행위를 숨기기 위해 자결했다고 말한다. 사무라이 아내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지조를 갖춘 여자로 보이기 위해 하소연한다.
<라쇼몽>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기억의 주관성을 보여준다. 현재에서 과거로 전환하는 영화적 기법이 ‘플래시백’(flashback)이다. <라쇼몽>은 산적과 사무라이 부부 그리고 나무꾼의 진술까지 총 4개의 플래시백으로 이뤄져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관련 인물들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과거를 복기하는 연출기법이 바로 ‘라쇼몽 기법’으로 불리며 지금도 다채롭게 변주되고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자서전에서 <라쇼몽>의 주제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허식 없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 시나리오는 그런 허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그렸다. 아니, 죽어서까지 허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죄를 그렸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업이다. 인간의 구제하기 힘든 성질이다. 이기심이 펼치는 기괴한 이야기다.”
구로사와 감독은 1951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1952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일본영화의 진가를 서양 영화계에 떨치며 명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근대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두 개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세계 명작 고전 영화의 하나로 등극하면서 영화학도에겐 필수 분석 텍스트다.
사람들은 믿고 싶어하는 내용이 진실이라고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마음 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 자신의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만 선택하는 인지적 오류를 가리킨다. 인간은 내재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성향을 품고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게 전형적인 확증 편향이다.
페이스북, 확증 편향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SNS 환경, ‘팩트(fact)’의 판단 기준이나 절차에 대한 객관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 사건에 대한 다각적인 정보가 밝혀진 후에도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확증 편향이 뚜렷하게 작용한다. 설왕설래 횡설수설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난무한다.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믿어버린다.
사건의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수사? 각 인물마다 왜 진술이 모두 다른지 그 이유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도 진실 찾기의 한 방편일 수 있다. 진실은 하나일지라도 얼마든지 주관성의 변주에 따라 다양하게 산재한다. 애당초 인간의 이기심은 어이할 수 없고 하루하루 당면하는 삶의 조건이니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로 이뤄졌지만 현재는 과거를 재편집한다. 재편집된 과거는 과거일까 현재일까 또 다른 미래일까. 사람 사는 세상, 온갖 라쇼몽 현상이 넘쳐난다. 오늘도 사람들은 부단히 ‘라쇼몽의 공간’으로 다가오고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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