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25-03-12 17:22:06 수정 : 2025-03-12 21: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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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경로당이 아니라 숙소죠.”
최근 서울 마포구 창전동효도숙식경로당에서 만난 입소자 A(71)씨의 말이다. 복지센터 2∼3층에 마련된 숙식경로당에는 70∼80대 노인 11명이 기거한다. 이곳에 입소하려면 보증금 300만원과 월 임대료 6만∼7만원, 관리비 5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A씨 같은 수급자는 보증금과 월 임대료가 면제된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을 위한 경로당을 표방하지만 사실 주거시설인 것이다.
마포구는 지난해 5월 ‘전국 최초로 시도하는 숙식을 해결하는 경로당’을 수식어로 ‘효도숙식경로당’을 열었다. 하지만 법의 사각지대에서 시설이 운영되는 탓에 노인들의 안전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구는 이 시설을 자체 조례로 만든 ‘노인공동생활시설’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례의 상위법인 노인복지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설 유형이다. 노인복지법은 노인시설을 크게 세 종류(주거·의료·여가시설)로 구분한다. 이 중 경로당처럼 낮에만 이용하는 시설은 ‘여가시설’, 숙박이 가능한 시설은 ‘주거시설’로 등록해야 한다. 이근홍 협성대 명예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이 시설은 경로당이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주거시설에 해당해 법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효도숙식경로당이 현재 숙박시설로 운영되고 있으면서도 노인복지법이 규정한 노인 주거시설의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이 시설을 주거시설인 ‘노인복지주택’으로 보면 ‘30세대 이상’ 조건에 미달하고, ‘노인공동생활가정’으로 봐도 ‘입소자 4.5명당 돌봄 인력 1명 이상 상주’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지방 조례로 상위법 요건을 완화할 수 없다”며 “이곳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구청이 형사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시설의 문제점은 도입 초기부터 제기됐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2023년 3월 마포구의회 복지도시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장정희 마포구의원은 “24시간 노인들이 거주하면 경로당이 아닌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같은 달 작성된 조례안 심사보고서에는 “야간에 관리자가 없어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효도숙식경로당에는 의료진이나 24시간 상주 인력 배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 관계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사고 위험이 있어 조례 검토 때부터 말이 많았다”면서도 “법률 자문을 거치지는 못했다”고 인정했다.
시설 관계자는 “야간에는 상주 인력이 없어 응급상황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뇌혈관 질환이 있던 한 입소자가 쓰러졌을 땐 의료진 없이 다른 입소자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황순찬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어르신들이 고립된 상태로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보면 케어받기 어렵다”면서도 “외국처럼 노인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건강관리와 식사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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