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김태환 기자] 보험업계가 사전에 정의된 지수(Index)를 기준으로 보험금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 보험 상품인 ‘지수형 보험’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통 보험과 달리 개별 피해 조사가 필요 없고, 신속한 보상이 가능한데다 소비자 분쟁의 여지가 적어 운영비 절감 등이 기대된다. 삼성화재가 국내 최초로 지수형 보험을 출시한 가운데 KB손해보험도 관련 상품을 검토하는 등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국내 보험업계 최초로 항공기 지연 시간에 따라 정액형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출국 항공기 지연·결항 보상(지수형) 특약’을 출시했다.
기존의 실손형 항공기 지연 보장은 항공 지연 증명서 및 지연으로 인한 대기시간 중 발생한 비용 영수증 등 별도의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실제 손해액을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지수형 항공기 지연 특약은 국내공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여객기가 결항 또는 2시간 이상 출발 지연될 경우 지연 시간에 비례하여 최대 10만원(6시간 이상 지연 및 결항시)까지 정해진 보험금을 지급한다.
손해보험협회는 최근 올해 목표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지수형 보험 활성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병래 손보협회장은 “그간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해야 보상받을 수 있었던 기후보험은 일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즉시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협의할 예정”이라며 “강수량 등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손해사정 절차 없이 바로 보상받을 수 있는 지수형 보험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수형 보험의 세계 시장규모는 2023년 148억달러에서 오는 2032년까지 393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으로 보면 11.5%의 성장률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는 자연재해 위험을 보장하는 상품 비중이 56%로 가장 높았고, 지역별로는 북미가 35%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돼 있다.
미국에서는 작물생육에 필요한 강수량 부족을 보장하는 강수보험(Rainfall Index Insurance), 지진 피해자에게 소액 정액급부를 긴급 지원하는 지진보험 등 다양한 상품이 개발·판매되고 있다. 일본에는 진도 6 이상의 지진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소액단기보험이 있다. 보험 가입에서 보험금 수령까지 메신저 플랫폼인 ‘라인’을 통해 간편히 처리된다.
보험업계에서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리스크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지수형 보험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지난 2023년 자연재해로 인한 글로벌 경제적 총손실은 2800억달러에 육박하지만, 보험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율(보장격차)이 62%를 기록하고 있다.
권순일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위성 데이터 등 기술 발전에 따라 기후 리스크 측정의 정밀도가 향상되고 다양한 지표 개발이 가능해졌다”면서 “지수형 보험 운영의 가장 큰 난관인 ‘객관적 측정’의 문제가 해소되고, 적용 가능 범위 역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후 관려 보험을 넘어서서 투자 목적의 지수형 보험 확산을 위해서는 보험업법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법령상 파생금융상품과 관련된 규제에는 ‘금지 또는 제한되는 자산운용’과 ‘자회사의 소유’에 관한 조항이 있다. 만일 주가지수나 채권지수 등 변동이 심한 지수에 연동될 경우 헤지(위험 자산 가격 변동 제거) 목적의 파생상품 활용이 필요한데, 여기에 대한 제한이 생기게 된다. 자회사 자산운용 역시 자회사 지분 보유와 투자 한도 규제가 있어, 보험사의 지수형 보험 상품 설계에 제한이 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수형 보험이 지수연동 투자상품으로 활용되기엔 현행 법령상 어려움이 있다”면서 “보험사의 파생상품 활용 범위를 일부 완화하거나, 헤지 목적의 파생상품 운용이나 자회사의 투자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면 투자와 관련된 지수형 보험 상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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