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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08: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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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글 잘쓰는 ‘쟁이’들이 많습니다. 작가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더라도 촌철살인급 문장 구사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숨은 글쓰기 고수를 만나려면 주요 커뮤니티를 찾으라고 하죠. 그만큼 곳곳에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하물며 작가로 등단한 이들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닐까요.
최근 작가로 활동 중인 두 사람이 여행과 관련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공교롭게 두 사람 모두 등단하며 신인상을 받은 특별한 이력이 있습니다.
2022년 ‘계간현대수필’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차미란 수필가는 자신의 첫 에세이집 ‘방향을 버리면 바다가 열린다’를 통해 아시아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감상을 고백하듯 책으로 옮겼습니다.
1999년 ‘문학과 의식’ 시 부문 신인상을 거머쥐며 특유의 감수성을 내보인 도희서 작가는 ‘떠나는 순간들’이란 여행사진 문장집을 냈습니다. 글만큼이나 사진을 사랑하는 도 시인이 18개 도시를 여행하며 느낌 감정을 사진과 함께 엮었습니다. 여책저책은 이 두 작가의 글과 사진을 살뜰히 살펴봅니다.
글쓰기에 전념하려 하던 일을 모두 접었다는 차미란 작가는 그의 첫 에세이집 ‘방향을 버리면 바다가 열린다’를 글쓰기 수련 고백록이라 정했다. 또 독서감상문이라고도 밝혔다. 일단 이 책은 라오스, 대만, 인도, 태국, 일본 등 주로 아시아 국가의 도시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 때문에 여행기로써의 역할은 분명하다. 다만 글을 읽다 보면 삶에 대한 작가의 만만치 않은 생각과 성찰에 공감하게 된다.
그는 여행하면서 책을 늘 가지고 다녔다. 마르셀 에메의 ‘생존 시간 카드’, 정지돈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등 10여 편에 달한다. 이 책들은 그가 여행하며 접한 감정들과 잘 버무려져 그만의 독서 후기로 재탄생했다. 그래서 독서감상문이란 정의도 맞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무겁거나 재미없지는 않다. 가볍게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실수담과 여행 중 누구나 한 번쯤 ‘큰일날 뻔했네!’하며 가슴이 철렁한 순간에 대한 에피소드도 가득하다. 대만 타오위안공항에서의 현지 카드 사기 사건이나, 끼니를 놓쳐 헤매다 결국 백화점 음식점 코너에서 비빔밥으로 간신히 해결했다는 이야기는 연한 미소를 짓게 한다. 하지만 태국 끄라비에서 애초의 여행 일정을 바꿨다가 방콕 수완나폼공항에서 겪은 사건은 언어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줬다. 여성 혼자 공항 직원들에게 심문에 가까운 질문에 시달린 당시 상황을 상상하면 불쌍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작가는 라오스에서 일본 홋카이도까지의 아시아 여행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꾸준함’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소설을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많이 쓰자고 다짐했다”며 “또 ‘방향을 버리면 바다가 열린다’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밝혔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명제는 그가 홋카이도의 삿포로 스스키노 거리를 헤매며 정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여행기를 쓰려는 독자들이 참고해도 좋은 장점을 갖추고 있다. 작가의 여행기에는 그 여행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고민하고 성찰한다. 여행 중 틈나는 대로 독서와 메모를 하고 한 편의 글로 정리하는 것은 스스로가 정한 여행의 목적임을 잊지 않는다.
작가는 “이 에세이는 스토리텔링이다. 자전적 이야기이고, 환상이면서 리얼리티”라면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얻은 것들을 소재로 이야기하듯 에세이를 써내려 갔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고자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했으나 그것은 양념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긴 원고를 쓴 뒤 모두 지우고 한 문장만 남기는 작가가 있다. 그의 문장은 서정적이면서 단단한 통찰을 담고 있어서 한 문장만으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그는 사진 속에 한 편의 시 같은 이야기를 담는다. 사진을 사랑하는 도희서 작가가 ‘떠나는 순간들’에 담으려 한 장면과 문장이 바로 그러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사진과 문장은 어느 하나도 나머지를 보조하는 수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장이 사진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며, 사진이 문장의 배경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한 장의 사진과 하나의 문장은 분리할 수 없는 세트로,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낸다는 얘기다.
사진과 문장이 잘 조화를 이루게 하는 수단 중 가장 훌륭한 선택은 여행이다. 특히 도 작가처럼 사진 또는 문장,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하는 이에게 여행은 더욱 매력적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행이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일상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내면의 소리와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자신의 여행 방식이라고도 말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한 장의 사진과 하나의 문장을 조합해 찰나의 감정을 포착해 실었다. 18개 도시에서 발견한 157개의 감정들이 그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장면과 유명한 장소에 대한 정보가 아니다. ‘따뜻한 봄의 햇살, 꽃가루 향을 품은 바람과 공기, 그 속을 거닐던 수줍고 외로운 시선, 풍경의 온도, 향기, 빛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라는 책 속 글처럼 순간의 마음을 이미지로 포착하고 군더더기 없이 예리한 문장으로 풀어내려 했다.
때로는 ‘고독’이란 정서도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삶은,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의미한 것들을 지워갈 때 더욱 의미 있어진다’고 표현하며 여행은 무엇을 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줄여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무엇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 떠나는 것이며, 내면의 생각에 집중하고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마지막으로 여행이 단순히 일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가 담은 장면들은 여행지의 모습이라기보다 다른 지역의 일상에 가깝다.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나의 일상을 낯설게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행복과 삶의 지혜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특별할 수 있는지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글과 사진을 보는 내내 자신만의 내면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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