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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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he Fxxx Is Going On? (후편)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라진 반야를 찾아서 떠나는 여정. 앞서 집요한 반복성에 대해 살펴봤다면 이번엔 대구와 변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뉴욕의 구석구석을 함께 헤매고 다니지만 서로의 목적은 정반대이다. 심복들은 애니와의 결혼을 무효화하기 위해 반야를 찾아야 하고, 아노라는 반야의 의지를 확인해서 그들의 시도를 실패로 만들어야 한다. 그 무엇도 우리의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을 끝장낼 수는 없을거야. 왜냐하면 우리는 맹세했으니까. 한밤중 라스 베이거스 작은 예배당에서 "평생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란 질문에 반야는 무언가 쫓기듯 고개를 끄덕였고 아노라는 "좆나"(fuck) 라는 강조 표현까지 써가며 약속했다. 

이때 애니와 아노라는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애니는 스트립 댄서로 일할 때 쓰는 이름이고 아노라는 그녀의 본명이다. 직업인으로서의 아노라는 아노라이길 거부하고 애니로서 일을 수행한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그녀는 애니라는 이름 대신 원래 이름인 아노라로 호명된다. 반야와의 관계가 처음엔 직업적 자아로 맺어졌다가 결혼과 함께 본래적 자아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야 부모나 그들의 심복들 입장에서 이런 식의 구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들 눈에 그녀는 어쨌거나 성노동자 애니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든 집안에 성노동자가 며느리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 반야의 엄마에게 자신을 ‘아노라’라고 소개하는 아노라. 하지만 반야의 엄마는 그녀의 손길을 잡는 것조차 수치스럽다는 듯 악수에 응하지 않는다. 반면 아노라는 ‘창녀’라는 손가락질에 불같이 날뛰며 화를 낸다. "창녀? 내가 창녀라고?" 우리는 앞서 거액을 대가로 애인 노릇을 해주기로 한 모종의 계약 거래를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창녀’란 말에 길길이 날뛸 수 있을까.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 반야가 결혼한 대상은 애니가 아니다. 아노라다. 그녀는 애니가 아니라 아노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애니/아노라가 이름과 함께 자신의 달라진 정체성을 보여준다면 반야는 행동으로 정반대의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에서 낯선 노크 소리와 함께 심복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그는 근심걱정 없고 순수한 러시아 재벌집 아들이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이끌리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한다. 화를 낼 일도 없다. 그는 그저 ‘즐겨라’라는 자아의 명령에 충실할 따름이다. 하지만 심복들 등장과 함께 위기가 닥치자 그가 선택한 방법은 지금 이곳으로부터 도망쳐 종적을 감추는 것이다. 사방팔방 수소문한 끝에 겨우 그를 찾아냈지만 고주망태에 인사불성이다. 한마디로 현실 문제로부터 벗어나 있다. 당사자 대신 문제 해결의 짐을 짊어진 쪽은, 심복 3명과 아노라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정반대이다.

하지만 현실로부터 영원히 도피할 수는 없는 법. 돌아온 의식과 함께 그는 어느쪽이든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는 선택의 주체가 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선택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그가 아니라 그의 부모이다. 반야가 보여주는 유일한 선택은 부모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우선 순위는 아노라가 아니라 부모이다. 아노라가 줄 수 있는 건 사랑이지만 부모가 줄 수 있는 건 재벌 가문의 윤택한 삶이다. 그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은 사실 부모의 재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미성숙함에 지나지 않는다, 고 영화는 말한다. 반야의 부모가 등장한 3막 이후, 엄마 아빠 등 뒤에 숨은 듯 앉은 반야는 아노라의 시선에 제대로 응답조차 하지 못한다. 애니와 처음 만날 때 보여준 그의 매력은 한없이 쪼그라들고 만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노라가 간직했던 실낱같은 희망은 산산히 깨져 버린다. 혼인 무효 서류에 거칠게 서명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아노라. K-드라마 뺨치게 표독한 반야의 어머니는 그녀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고 기어이 한마디 보탠다. "얘야, 네가 입은 그 모피 코트 내 꺼 아니니?" 청혼을 누가 먼저 했는지,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그들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그들은 염치란 걸 모른다.

아노라를 둘러싼 등장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염치를 아는 존재는 심복 가운데 막내 격인 이고르다. 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무표정한 얼굴, 날카로운 눈매로 그녀를 단순해 제압해 버릴 것처럼 생긴 그는 막상 아노라가 살려달라고 떠나가라 소리 지르기를 반복하자 애원하듯 멈춰달라고 간청한다. 혹은 헤칠 의도는 없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진정시키려 애쓴다. 자신에겐 그럴 권리가 전혀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보기만 해도 살이 에이는 추위를 뚫고 브루클린 해변가를 걸어갈 때 아노라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챙겨주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반야가 돈 쓰는 것 외에 아노라를 다정하게 챙겨주는 모습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굳이 꼽자면 처음 반야의 집에서 만났을 때 물 한 잔 건넨 정도?)

반면 아노라는 그의 친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당연하다. 애니가 아닌 아노라로서 얻게 된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러 온 자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혼인 무효 절차가 끝나고 반야의 집에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있지만 이고르를 향한 아노라의 적개심은 풀릴 줄 모른다. 그러다가 영화의 막바지, 헤어지기 직전 이고르가 몰래 챙겨온 깜짝 선물과 함께 큰 변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렇게 이 영화에서 가장 까다로운 대목에 이르게 된다.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내려 온통 하얗게 된 풍경. 이고르가 할머니에게서 빌린 낡아빠진 차. 적막 속에 와이퍼 작동하는 소리만 끼익끼익 들려온다. 깜짝 선물에 무언가 얻어맞은 듯한 아노라. 상념에 젖는 듯 하더니 운전석에 앉은 이고르의 무릎 위로 올라가 성행위를 시작한다. 예상 밖 갑작스러운 접근. 하지만 이고르는 거부할 생각이 없다. 아노라에게 키스하려는 이고르. 아노라는 고개를 돌려 피한다. 그리고 눈물을 터트린다. 영화에서 아노라가 눈물을 보인 건 처음이다. 무엇이 그녀를 울게 만들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첫째. 고마움. 지워야할 추억과 금전적 보상을 되찾아 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을 수 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반문. 뒤이어 그녀가 수행하는 성행위는 고마움에 대한 보답인가. 이것은 아노라에게 자연스러운 일인가? 그것도 하루 전날밤까지 경멸해 마지 않았던 남자에게?

둘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착각과 뒤이은 자각. 아노라는 애니로 일할 때 금전적인 보상을 받으면 그 대가로 성노동을 제공하곤 했다. 이고르의 깜짝 선물은 값비싼 물건이다. 이를 건네받고 성적인 방식으로 보답하는 건 애니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건 아노라가 자신을 순간 애니로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이고르가 키스하려고 다가선 순간, 자신의 위치를 재빨리 깨닫고 아노라로 돌아온다. 아노라로서 애니의 정체성을 수행한다는 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눈물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노라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물건을 선물로 받았을 때 이를 일종의 화대로 착각한다는 게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셋째. 선물의 원래 자리에 대한 그리움. 이고르가 건넨 선물은 반야와의 결혼 증표이다. 그러므로 이 선물은 불과 며칠전까지 현실이었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반야와의 섹스도 물론 포함된다. 그때 생각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서 몸을 섞게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차, 나에게 키스하려고 다가오는 그는 반야가 아니구나. 아, 그때 함께 했던 그는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짧게나마 행복했던 그 순간 역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구나. 행복했던 순간 직후 찾아온 모멸스러운 경험들. 수치심. 가슴에 눌러 담아 봉인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리고 만다. 나에겐 이 설명이 가장 그럴 듯 하다. 

감독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이 지점에서 글을 잠시 멈추고 찾아보니 인디와이어(Indiwire)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은 마지막 신을 놓고 열린 해석이 가능하도록 찍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인터뷰에서 발견한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 션 베이컨은 <아노라>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염두해 둔 고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언급한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비리아의 밤>이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지독한 사기를 당하고 겨우 목숨을 구한 카비리아. 구원이란 게 있을까 싶은 그 순간, 마스카라가 얼룩져 검은 눈물이 그녀의 왼쪽 뺨을 타고 흐를 때,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카비리아. 

<아노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노라의 미소도, 그녀 곁에서 응원가를 불러주는 사람들도 없지만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검은 바탕에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뽀득거리며 눈을 닦아내는 와이퍼 소리, 흐느끼는 아노라의 울음 소리는 계속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참았던 눈물을 한바탕 흘리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그러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 볼 수 있다는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극장에 불이 켜지고 난 뒤 영화가 주는 감흥과 질문을 기록합니다. 영화라는 꿈과 영화관 밖 현실에 대해 사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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