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인구 188만명. 동유럽의 작은 나라 라트비아에 첫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플로우’의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1994년생, 서른살 갓 넘은 젊은 영화인이다. 첫 장편 애니메이션 ‘어웨이’를 작화부터 편집, 음악까지 1인 제작으로 완성해 주목받았던 질발로디스는 고국 라트비아와 프랑스, 벨기에 공동 제작으로 완성한 두번째 장편 ‘플로우’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비롯해 전세계 주요 애니메이션 상을 싹쓸이했다.
19일 개봉하는 ‘플로우’는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 등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작법과 대사 한줄 없는 시각적 경험만으로 큰 울림을 준다. 관객을 사로잡는 애니메이션은 축적된 노하우나 기술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완성된다는 걸 입증하는 작품이다.
정확한 장소와 시점을 알 수 없고 인간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지구에서 대홍수가 일어난다. 빈 집에 홀로 남아있던 고양이는 물이 차오르자 본능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 간신히 살아남는다. 고양이는 더는 옴쭉할 수 없게 되자 물 위를 떠다니는 배에 조심스럽게 오른다. 무리 지어 다니던 개떼에서 낙오된 골든 리트리버가 이 배에 승선하고, 비슷한 처지의 오동통한 설치류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희고 큰 새 뱀잡이수리까지 합류한다.
동물들이 모험을 떠나는 애니메이션은 흔하지만 ‘플로우’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우선 인간의 관점에서 암울한 재앙일 수 있는 대홍수 이후의 파괴된 지구가 어둡게 그려지지 않는다. 땅을 가득 채운 물은 때로 생명을 위협하지만 주인공들에겐 그 자체로 새롭고 경이로운 환경이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수채화처럼 묘사된 하늘과 물, 숲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동물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처럼 각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의인화되어 있지 않다. 주인공이라 할 만한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을 성가셔하고, 개는 해맑게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어떤 동물과도 잘 어울리는 것으로 알려진 카피바라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롭게 잠을 잔다. 욕심 많은 여우원숭이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무리에서 버림받은 뱀잡이수리는 고독하게 먼 곳을 응시한다.
‘동물을 동물답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게 첫번째 목표였던 감독은 실제 동물들의 습성과 울음소리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았다. 영화는 이들이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만나는 다양한 상황에서 발휘하는 본능적 행동에 최소한의 인위적인 스토리텔링만을 추가하면서 공존과 우정이라는 가슴 뭉클한 순간들을 완성해나간다.
의인화되거나 과장된 캐릭터가 아니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동물들과 시각세포 하나하나 자극하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 고정관념을 깨는 주제 의식과 이야기 전개까지 나무랄 데가 없다.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북돋워주고 싶은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경험하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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