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풍이나 수학여행, 해외여행도 계획을 짜는데 왜 가장 중요한 여행을 위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요? 많이 계획할수록 인생의 마지막 여행도 잘 떠날 수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 6명의 장례 절차를 이끌며 ‘대통령의 염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장례지도사 유재철(66) 대한민국장례문화원 대표가 말했다. 천만 영화 ‘파묘’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인물의 뼈대를 제공한 당사자다. 1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숨’(윤재호 감독)은 유 대표를 비롯해 죽음 가까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한다. 유 대표는 관행대로만 따르는 한국 장례문화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고민하는 인물이다. 1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장례는 고인을 추모하면서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에요. 밥 먹으며 지인들과 근황 확인만 하고 떠나는 게 얼마나 아까워요. 그래서 제 주변부터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11년 전 장모님 장례 때 지인들에게 가급적 발인 전날 저녁 8시에 와달라고 당부했다. 조의금은 받지 않았다. 3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고인의 삶을 짧게 반추하고, 시를 낭독하고, 대금과 판소리 공연도 했다. 장인어른 장례 때는 이런 영결식을 반대했던 처남도 앞에 나와 “좀 아까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는데 하늘나라 잘 도착했으니 이제 그만들 울고 씩씩하게 잘 살라고 하시더라”며 눈물 젖은 가족과 조문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유 대표는 “제 장례 때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이장희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딸에게 부탁해놨다”고 했다.
올해로 32년째 장례지도사 일을 한 유 대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장례문화지만 처음 일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90년대만 해도 화장 문화가 정착이 안 됐었거든요. 3남2녀 자식들이 화장이냐 매장이냐 다투면서 소중한 장례 시간을 다 보냈죠.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영정 사진 준비가 안 돼서 당시 비닐 코팅된 주민등록증을 확대해 도장이 흉하게 얼굴을 가린 사진을 쓴 적도 부지기수였고요.” 젊을 때만 해도 가족과 지인들이 “딸 시집이나 보내겠냐”며 마뜩잖아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아와 자신이나 가족의 마지막을 부탁할 만큼 장례지도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대통령들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방송인 송해 등 유명인과 권세가뿐 아니라 무연고 사망자까지 숱한 죽음을 목도한 그는 죽은 이들이 모두 자신에겐 스승이라고 말했다. “건물 여러채 가진 유지였는데, 사지를 꽉 웅크리고 돌아가셨어요. 굳은 몸 펴느라 힘든 건 둘째치고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습이 안타까웠죠. 반면, 어떤 할머니는 한점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떠나셨어요. 마흔에 혼자 돼서 자식들 키우느라 온갖 모진 고생 다 하셨다는데, 정말 맑고 깔끔하더군요. 어떤 죽음을 맞아야 할 것인가 늘 생각하게 되죠.”
“유명했던 사람도, 유명하지 않았던 사람도, 떵떵거리며 위세를 떨치던 사람도,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도 마지막은 결국 좁은 관 속이 내 자리다.” 유 대표 목소리로 담은 ‘숨’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자전거나 스키를 잘 타려면 자꾸 넘어져봐야 하잖아요. 죽는 것도 연습하듯 많이 생각해봐야 잘 떠납니다. 죽음을 모르면 절반은 모르고 사는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영화를 보고 몰랐던 절반을 찾아서 더 멋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합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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