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영화, 시·그림을 만나다’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본 후 시인은 그 영화의 이미지를 시로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 함께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와 그림, 그리고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다. 좋은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을 하셨을 것이다. 좋은 영화 또한 한 폭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시인과 화가가 본 그 영화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일까.
‘1917’
감독:샘 멘데스
출연:조지 맥케이, 딘 찰스 채프먼
2019년, 러닝타임 119분
영국군 8대대 소속 일병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들은 에린 무어(콜린 퍼스) 장군에게 호출돼 특수임무를 맡는다. 영국군 2대대의 매켄지(베네딕트 컴버패치) 중령에게 공격 중지를 알려야 하는 임무다. 독일군 퇴각이 습격을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블레이크의 형을 비롯한 1,600명 병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두 병사는 ‘무인지대’를 넘어 목숨을 건 전진을 시작한다.
전쟁은 살상이 허용되는 가장 비인간적인 시공간이다. 도대체 어떤 명분이 있기에 살인이라는, 인간으로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허용되는가. 작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고민한 지점이다. 그래서 샘 멘데스 감독의 수작 전쟁영화 ‘1917’을 통해 함께 영화를 보고 전쟁의 본질에 대한 토론을 나눴다.
‘1917’은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7년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영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 두 젊은 병사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죽음의 골짜기로 젊은이들을 내 몬 전쟁의 비정함과 허망함을 스크린 뒤에 배치하고 아군을 살리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견뎌내는 젊은 병사의 희생과 의지를 표면에 앉혔다.
제1차 세계대전은 특히 명분도 없고, 승리도 없고, 영웅도 없는 전쟁이었다. ‘무인지대’(No Man’s Land)는 서부전선 최악의 전투 지역이자 1차 대전의 무의미한 소모전을 상징하는 곳이다. 적군과 아군을 사이에 둔 폭 300미터의 대치 지점이다. 철조망과 지뢰로 덮여 있고, 시체가 썩어가는 진흙 구덩이다. 시체를 밟고 진격하다 포탄이라도 떨어지면 시체의 살점과 뼈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이다. 금방이라도 총탄과 포탄이 떨어질 지 모를 그 곳을 지나 아군에게 밀서를 전달해야 하는 두 병사의 죽음의 여정이 ‘1917’이 전하는 이야기다.
‘아메리칸 뷰티’(1999)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던 샘 멘데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 리얼한 전쟁 묘사를 통한 대리전쟁 체험일까, 아니면 참혹함을 통한 반전 메시지일까. 화가 권기철은 ‘살아서 돌아오라, 평화로운 곳으로-나는 그곳으로 가네’를 통해 병사의 멀고 먼 에움길 끝에 놓인 초원과 나무를 그렸다. 영화는 푸른 초원에 있던 두 명의 병사로 시작해, 살아남은 한 명의 병사가 임무를 완수한 후 초원의 나무에 도착하면서 끝난다.
병사는 시체와 총탄, 증오와 적개심의 바다를 건너 이제 마음의 고향에 도착한다. 그리고 품속에서 사진을 꺼낸다. 웃고 있는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의 흑백 사진. 사진 뒤에는 ‘Come Back to Us’라고 적혀 있다 ‘꼭 살아서 돌아오라.’ 제발 살아서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간절함이다. 정안수를 떠놓고 길 떠난 아들의 무사귀환을 빌던 그 모든 어머니의 바람이 영화 ‘1917’의 메시지인 것이다. 그 병사가 살린 1,600명 병사의 어머니 또한 간곡히 빌었을 기도이다.
조명탄이 빚어낸 폐허의 명암 등 영화 속 많은 이미지가 있지만, 화가는 이 마지막 장면을 포착해 자신의 작품으로 그려냈다. 초원에 핀 노란 야생화를 하늘에 흩뿌려 처리했다. 진격 전 부르던 노래 ‘여행하는 이방인’(Wayfaring Stranger), 폐허 속 아기, 자장가, 시체 강에 내려앉던 체리 꽃잎 등 영화가 그려낸 감성의 상징들을 별처럼 표현했다.
하늘에는 달콤한 체리가 붉은 태양처럼 선홍빛으로 그려져 있다. 시각에 따라 아직 피를 부르는 전쟁의 광기가 도사린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초록과 노랑, 파랑과 베이지색 등 따뜻하고 온화한 색이 주류를 이룬다. 그럼에도 병사와 흔들리는 나무는 불안한 기색이 완연하다. 전쟁의 포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 병사의 작은 뒷모습에서 공허함마저 느껴진다. 고달픈 여정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흔들리는 수직의 나무가 더욱 그런 느낌을 전해준다.
그렇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2,000만 명. 곧이어 터진 2차 대전에서는 5,000만 명의 병사와 민간인이 숨졌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리아의 내전, 그리고 우크라이나까지. 시인 노태맹은 끝나지 않는 전쟁의 연속성을 먼저 제시하고 시를 전개하고 있다.
영화 또한 색다른 촬영 방법으로 전쟁의 연속성을 표현하고 있다. ‘원 컨티뉴어스 숏’ 촬영 기법이다. 마치 감독의 ‘컷!’ 사인이 없는 듯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적으로 촬영된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두 병사를 따라 참호와 무인지대의 진창, 온갖 시체가 널린 전장과 들판을 뛰지만 한 장면도 끊기지 않는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도 반복하는 인류의 어리석은 결정을 비꼬는 듯하다.
시인 노태맹은 시 ‘전쟁을 횡단하다’에서 ‘죽은, 지금 죽고 있는 이들은 정녕,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아르곤 숲에서 아무렇게나 합장된 이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아르곤 숲은 독일과 프랑스 접경지대의 숲으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곳이다. ‘기억되지 않은 병사’, ‘얼굴이 도려내어진’, ‘숫자들의 뼈 무더기’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무산된 허망한 죽음을 뜻한다. 겹겹이 쌓인 ‘무인지대’의 시체들을 무의미한 합장된 주검으로 통탄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는 유럽을 관통하는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치러졌다. 근대화로 인해 신형 병기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전투의 대부분은 병사들의 맨투맨 전투로 이뤄졌고, 그래서 그 참혹함은 더했다. 19세기 ‘품위’(?)를 유지했던 전투는 사라지고, 징병된 젊은 병사의 희생만 시체처럼 쌓여갔던 비정한 전쟁이었다.
왜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병사들은 알지 못했다. ‘그 모든 나무들이 유령처럼 흔들거렸다’는 시구는 화가가 그린 흔들리는 나무와 절묘하게 일치한다. 시인은 전쟁을 저지시키기 위해 ‘횡단하다’는 시어를 사용했다. ‘멈추라고, 이제는 멈추라고’ 전쟁을 가로질러 달린다. 기억되지 않는 병사들의 노래, 입 없는 입들의 노래는 ‘더 욕망하지 말라고’ 부르짖는다. 더 이상 어머니의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라고 절절하게 부르는 것이다.
전쟁을 횡단하다
_노태맹
제1차 세계대전으로 2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한국전쟁에서는 15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베트남전쟁에서는 2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죽은, 지금 죽고 있는 이들은 정녕, 무엇인가?
우리는 아르곤 숲에서
기억되지 않은 병사들의 노래를 들었네
노래는 슬펐으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고
병사들은 얼굴이 도려내어진 숫자들의 뼈 무더기로
아무렇게나 합장(合葬)되어 있었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네
저 가문비나무에 기대어 울고 있던 이가 누구인지
그렇게 언덕을 향해 돌격하던 병사들은 왜 모두
얼굴 없는 부재(不在)로 돌아왔고
어미들은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했는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네
참호 속에 쭈그려 앉아 명령으로 뱉어지는 순간까지
아미앵의 건물들은 왜 불타는지
왜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야하는지
병사들은 알지 못했네 모든 나무들이 유령처럼 흔들거렸고
그랬었네 우리는 아르곤 숲에서
기억되지 않은 병사들의 노래를 들었네
더 앞으로 나아가지 말기를
분노하지 말고 더 욕망하지 말기를
입 없는 입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네
무엇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지만
그리하여 나는 전쟁을 가로질러 달리네
진보(進步)를 가로질러 달리고 달리네
멈추라고 이제는 멈추라고
나는 얼굴 없는 전쟁을 횡단하네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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