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 제작에 단 7일"… 'AI 영화' 예술로 볼 수 있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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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야, 문희’의 한 장면. 인공지능으로 구현된 배우 나문희가 총을 쏘고 있다. 콘텐츠파크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나문희가 주연이지만 실제 그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가 있다. 나문희는 올해 84세지만 영화에선 20대로 돌아간다. 평소 나긋나긋한 말투와 태도의 그는 영화에서 전투기와 바이크를 거칠게 모는 여전사로 변신한다.
지난 연말 개봉한 인공지능(AI) 영화 ‘나야, 문희’ 얘기다. 영화는 세계 최초로 가상 인물이 아닌 실제 배우를 AI 기술을 통해 재연한다. 영화의 영상, 인물, 대사, 음악 모두 촬영이나 녹음 없이 AI로 제작됐다.
영화는 AI 영화 공모전 수상작 5편을 묶었다. 5명의 감독이 각각 만든 5편(‘쿠키게임’·’나문희 유니버스’·’지금의 나, 문희’·’두 유 리얼리 노우 허(DO YOU REALLY KNOW HER)’·’산타 문희‘)의 상영시간은 총 17분 29초. 한 편당 3분 남짓이다.
배우 나문희가 지난 11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단편 AI 영화 ‘나야, 문희’ 시상식에 참석해 수상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AI 영화 제작기간도 기성 영화에 비하면 매우 짧다. 유지천 감독이 제작한 ‘나문희 유니버스’는 단 일주일 만에 완성됐다. 건설업 종사자인 유 감독은 시간이 날 때마다 독학으로 AI 기술을 터득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나문희 선생님을 가장 비슷하게 만드는 게 숙제였다”며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명령어를 다양하게 입력해 수십 장의 이미지를 생성했다”고 설명했다.
‘두 유 리얼리 노우 허’를 제작한 정은욱 감독도 일주일 만에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실사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며 “AI 영화는 실사 촬영만큼 원하는 장면을 정확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현장에 나가지 않고도 몇 초 만에 원하는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AI 영화는 미국, 멕시코, 한국 등 다양한 배경을 제약 없이 구현할 수 있어 비용 측면에서도 기성 영화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했다.
지난달 12일 열린 제1회 부산국제인공지능영화제(BIAIF)에 참가한 창작자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AI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데 걸린 기간’으로 평균 8~15일이라고 응답한 이가 전체의 31.8%(34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평균 4~7일 28%, 평균 16~30일 21.5%, 평균 2~3일 14% 순이었고, 30일 이상 걸렸다고 응답한 이는 4.7%로 가장 적었다.
8일 개봉한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의 한 장면. 미디어캔 제공
기성 영화계에서도 AI 기술 접목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8일 개봉한 코미디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의 일부 장면에도 AI 기술이 사용됐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의 젊은 시절을 구현하거나, 바위 틈에서 온천수가 터지는 장면을 연출할 때 AI 기술이 쓰였다. 지난달 4일 개봉한 공포 영화 ‘원정빌라’에서도 후반 작업의 20~30%를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비의 약 30%를 절감했다.
AI 영화 시장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AI국제영화제'(KAIFF)엔 2,000여 편이 출품됐다. 국내 3대 영화제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AI 영화 경쟁 부문을 신설했고, 부산국제영화제(BIFF)도 AI 영화 마켓을 마련했다. 전주국제영화제(JIFF)는 AI 영화 토론 세션을 진행했다. KT 등 국내 주요 통신사들도 AI영화 제작을 검토하거나 추진 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AI 영화를 인간 고유의 창작물로 볼 수 있을까.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저작물로 명시하고 있어, AI가 생성한 작품에 대해서는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사람과 AI가 함께 제작한 창작물의 경우 부분적으로 저작권을 인정하는 ‘편집저작물’로 등록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예술창작 분야에서도 AI 기술 도입이 불가피한 만큼 저작권 범위 등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은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AI문화경영연구소장은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 업계에서 AI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라며 “AI 생성물에 대한 정의, AI 창작물의 저작권 문제 등 법제적 측면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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