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스포츠도 하나의 콘텐츠…기업 후원 많아졌으면” – 한겨레

“진짜 계속 만나러 다녔어요. 저 만나기 불편하면 예산을 달라고 했죠. 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휠체어 끌고 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래야 우리 후배가 편하게 훈련할 수 있으니까요.”
대한장애인체육회 정진완 회장(59)의 얘기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열린 회장 선거에서 총 64표 중 57표, 89.1%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이 재선에 성공한 최초의 사례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장애인체육회 예산은 231억원가량 늘어났었다. 행동에는 제약이 있으나 행위에는 제한을 두지 않은 그였다.
정진완 회장은 2000 시드니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선수 은퇴 뒤 충남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 과장,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장에 이어 2021년 대한장애인체육회 5대 회장에 취임했다. 현장은 물론이고 행정도 잘 안다는 것이 그의 최강점이다.
이천선수촌장 때부터 전반적인 훈련 시스템을 바꾸려고 했던 것도 그의 선수 시절 경험에서 기인한다. 정진완 회장은 22살이던 1987년 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됐다. 한동안 병원에만 누워 있었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휠체어농구대회를 보게 됐다. 그즈음 연세대 아이스하키 선수였다가 경기 중 심한 바디체크(몸싸움)로 하반신 마비가 왔지만 삼육재활원 체육교사를 하면서 운동도 병행했던 이성근 씨(2001년 타계)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정 회장은 당시를 돌아보면서 “‘아, 나도 운동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삼륜 스쿠터에 휠체어를 싣고 1988 서울패럴림픽 경기를 보러 다녔다. 마음 속에서는 점점 불꽃이 타올랐다. 이후 삼륜 스쿠터를 끌고 정립회관(서울 광진구 위치)과 삼육재활원(서울 관악구 위치)을 오갔다. 정립회관에서는 사격을, 삼육재활원에서는 휠체어농구를 했다. 정 회장은 “서울패럴림픽 이후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장해자, 불구자로 불렸는데 패럴림픽 이후 장애자로 호칭이 정정됐다. 이후 1990년대에 ‘자(者)’가 ‘놈 자’의 낮춤 뜻이 있어서 지금의 장애인으로 수정됐다”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스포츠였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1984년까지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다른 곳에서 개최됐는데 1988년부터 올림픽 개최지에서 패럴림픽도 함께 열리고 됐다.
정 회장은 “사격 선수 시절에 비장애인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했다”면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호흡법이나 장비 관리 방법 등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이전에는 그냥 감각으로만 총을 쐈는데, 비장애인 코치(이은철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덕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천선수촌장 때 겨울 종목에 처음 스포츠의과학을 접목했는데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 때 신의현이 크로스컨트리에서 한국 겨울패럴림픽 최초의 금메달을 따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2021년 장애인체육회장이 된 뒤 본격적으로 훈련 시스템에 변화를 줬다. 그 효과가 2024 파리패럴림픽 때 나왔다. 도쿄패럴림픽(2021년 개최) 때보다 금메달은 4개, 전체 메달 수는 24개에서 30개로 늘었다. 정 회장은 “설득의 과정을 거쳐 사격, 탁구, 배드민턴 등의 우수 선수에 대한 스포츠의과학 지원을 집중적으로 늘렸더니 성과가 나왔다. 이제는 다른 종목에서도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이 오고 있다”고 했다.
정진완 회장은 남은 임기 동안에도 장애인 스포츠에 스포츠의과학을 접목하는 시스템 안착은 물론이고 후배들을 위한 길 닦기에도 나선다. 정 회장은 “선수 출신 후배들을 행정가로 끌어줄 수도 있고, 지도자의 길을 닦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종목 지도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조화롭게 구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비장애인은 기술, 장애인은 경험과 멘털에서 도움을 줄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원유민이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선수위원에 당선됐듯이 후배들이 국제기구에서 다양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고도 싶다”고 했다.
정 회장은 최근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하형주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만나 향후 한국 스포츠 발전 방향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3명 모두 선수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 회장은 “유승민 회장에게는 홍보마케팅을 함께하자는 제의를 했다. 기업 입장에서 브랜드 홍보는 대한체육회가, 이에스지(ESG) 사회 공헌 부문은 대한장애인체육회가 함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해보자 제안했다”고 밝혔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 체육 정책에 대한 아쉬움은 다소 있다. 정 회장은 “전국 등록 장애인이 263만명가량 된다. 그중 60%가 서울, 경기, 인천에 몰려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는 장애인 생활 체육 시설이 많지 않다. 장애인 생활 체육 참여율이 35.3%(2024년 기준)에 불과한 이유”라면서 “작년까지 반다비 체육관(장애인 편의 시설을 갖춘 복합 체육관)이 102개가 지어졌는데 경기도에 20개 정도 있고, 인천에 2개, 서울에는 1개뿐이다. 수원에는 하나도 없다. 서울에 반다비 체육관을 지으려고 해도 예산 문제로 짓지를 못한다. 장애인 시설일수록 이동권 제약 때문에 역세권에 지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체육 시설은 땅값에 비례해 예산 지원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손쉽게 운동을 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완 회장은 장애인 스포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품고 있다. 과거의 그는 “장애를 입으며 좌절했던 마음을 스포츠로 풀고, 살아있는 것을 느끼기 위해 세계 최고가 되고자” 했었다. “장애 뒤 나를 증명해 보이고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수단이 스포츠였다”라고 말한다. 현재의 그는 “장애인 스포츠도 하나의 콘텐츠”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기업 후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휠체어농구 팀(블루휠스)을 운영 중인 코웨이 같은 기업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가 꿈꾸는 미래는 “장애인, 비장애인 차별 없이 그저 한 인간으로 같은 종목의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사회”다. 정진완 회장은 “스포츠 통합을 위해 함께하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통합되면 부작용이 나겠지만 하나하나 조금씩 같이하다 보면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서울패럴림픽이 장애 인식 변화의 시초였듯이 “통합사회의 첫걸음이 스포츠였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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