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바라봤던 그 바다…강진만의 명품 노을 – 한겨레

강진 정수사에 갔다. 2024년 12월1일 광주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남짓 걸렸다. 정수사에서 만난 한 보살은 “다산 정약용 선생과 제자들이 이 절에 자주 오셨다고 들었다”고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18년 유배 기간에 외가인 해남 윤씨 집안과 학문적으로 활발하게 교류했다. 강진 도암 다산초당에 머물던 다산은 정수사를 오가며 강진만의 지는 노을을 만났을 것이다.
정수사는 ‘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과도 인연이 있다. 윤한봉도 해남 윤씨 후손이다. 강진군 칠량면 출신인 윤한봉은 광주일고 2학년 때 첫 연애에 실패하고 공부를 작파했다. 대학을 축산학과로 진학하겠다고 고집해 부친과 갈등을 겪었던 윤한봉은 고향으로 돌아와 재수한다며 들어간 곳이 정수사다. 정수사에서 지내던 윤한봉이 고향 친구들과 자주 찾았던 곳이 강진만 바다였다.
정수사에서 대구면 소재지 수동리로 갔다. 대구면은 강진·완도·진도·영암 등 6개 군의 농민군을 이끌었던 동학 접주 윤세현의 고향이다. 해남 윤씨 후손인 윤세현은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경세유표’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 인물이다. 경세유표는 다산이 제자들에게 비밀리에 보관할 것을 부탁했을 정도로 혁명적인 저작이다. 농민군은 강진 인근 장흥 석대들 최후 전투에서 패해 관산으로 밀렸고, 윤세현은 겨우 살아남아 몸을 피해 은신한 곳이 정수사였다.
수동리에서 나와 대구중학교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갔다. 동학농민군들은 장흥 관산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한 뒤 강진만 등 바다를 거쳐 섬으로 숨었다. 차를 세워두고 수동리 앞 해변길을 따라 걸었다. 더베이펜션에서 사당리 고바우공원까지 거리는 약 3㎞ 남짓이었다. 멀리 뾰족뾰족한 주작산이 보였다.
수동리 앞 해변길은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름을 붙인 ‘남파랑길’ 81구간 중 일부다. 남파랑길 81구간은 마량항에서 가우도 들머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정약용, 윤세현, 윤한봉이 시차를 두고 바라보았을 강진만 그 바다에 노을이 잔잔하게 깔렸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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