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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03 23:09:43 수정 : 2025-02-03 23: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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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삼성전자 격인 화웨이는 2년여 전 미국의 독한 제재에도 고성능 스마트폰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집권 시절이던 2019년 5월 안보 위협을 이유로 자국산 반도체 기술·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어야 했고 2021년 매출은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런데도 화웨이는 구형 장비로 개발한 첨단 반도체(AP)를 탑재한 스마트폰 ‘메이트 60’으로 반전 드라마를 썼다. 중국인은 ‘미 제재를 뚫고 이뤄낸 쾌거’라며 환호했고 ‘궈차오’(國潮: 애국 소비) 열풍까지 불었다. 그 덕에 화웨이는 이듬해 제재 이전 실적을 거의 회복했다. 지금도 글로벌 통신장비시장에서 점유율 1위이고 중국 스마트폰 판매는 애플을 제쳤다. 화웨이의 부활은 대중 제재가 외려 중국의 첨단기술 자립속도를 높인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번에는 인공지능(AI) 신생기업이 일을 냈다. 중국 항저우의 스타트업 딥시크는 최근 거대언어모델(LLM) V3와 최신형 추론모델 R1을 내놓았다. 성능이 챗GPT의 최신 모델과 비슷하고 수학과 물리, 코딩 및 추론 분야는 더 뛰어나다. V3 개발비는 챗GPT의 18분의 1 수준이다. 딥시크 주장에 따르면 개발 비용은 558만달러(78억1200만원)로 1억달러(1400억원)가 들어간 챗 GPT의 5.6%에 불과하다. 놀라운 건 지난 5년간 이어진 미국의 AI 핵심기술과 반도체 규제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R1 개발·훈련에는 엔비디아의 저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H800 2048개를 썼고 화웨이의 AI 칩도 대거 활용됐다. 딥시크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알고리즘 설계 등 소프트웨어 혁신으로 세계적 수준의 AI 모델을 구현한 것이다.
딥시크의 출현은 최고 AI를 개발하기 위해 고성능 칩에 막대한 돈을 들여야 한다는 통념을 깼다. 엔비디아가 고가의 AI 가속기를 독점 생산하고 오픈AI 등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은 사재기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딥시크가 오픈소스 모델로 누구나 공짜로 사용하는 R1을 내놓자 ‘값비싼 사용료를 내고 미국 AI를 왜 써야 하나’라는 회의론이 확 퍼졌다. 미 증시에서는 AI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공포가 덮쳤다. 최근 10년 새 AI 혁명이 산업·노동생산성을 높였다는 통계는 찾기 힘들다.
미 정부와 산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오픈AI는 딥시크의 데이터 무단 수집을 의심하며 조사에 돌입했다. 트럼프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대중 AI 칩 수출금지를 저사양칩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더 가혹한 제재를 가하더라도 중국의 AI 굴기를 막기는 힘들 듯하다. 중국의 AI기술 역량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중국의 AI 연구자는 41만여명(2022년 기준)으로 2위 인도(19만5000명)와 3위 미국(12만명)을 합친 것보다 많다. 알리바바는 지난달 말 챗GPT를 능가한다는 AI 모델을 내놨고 딥시크 수준의 AI 스타트업도 즐비하다.
딥시크의 흥행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저사양칩 사용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고 기술적으로도 새로운 혁신을 찾기 힘들다는 지적(유회준 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 원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배터리나 전기차처럼 뛰어난 가성비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다 나중에 성능까지 끌어올려 경쟁자를 무너뜨렸다. 이런 전략이 AI 분야에서도 놀라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화웨이의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는 마오쩌둥의 군사전략을 경영에 접목했다. 그는 국공내전 시절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農村包圍城市)는 마오의 전략에 착안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주변시장부터 선점한 뒤 미국, 유럽 등 주류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화웨이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딥시크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AI시장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한국도 ‘AI 3대 강국’ 목표를 세웠지만 성과는 초라하다. 이공계 인력난은 여전하고 혁신경쟁력도 날로 저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제라도 미·중 간 AI 패권경쟁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전략을 짜고 인재 양성·유출방지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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