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양심의 구성’ [강수돌 칼럼] – 한겨레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집단적 광기로 나라의 앞날이 결정되는 건 지난번 박근혜 탄핵 한번으로 족하다.” 마치 한 민주시민이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꾸짖는 듯하다. 실은 문화방송(MBC) ‘손석희의 질문들’ 속 홍준표 대구시장의 말이다. 그는 12·3 ‘계몽령’으로 헌법재판소 심판하의 윤석열을 옹호한다. 그에게 눈엣가시는 윤석열 등 내란 사태(계엄과 극우파의 법원 폭동 등)가 아니라 그 사태를 바로잡으려는 민중 저항이다.
민주당 등 ‘요원들’의 활약은 물론, 촛불과 남태령대첩, 응원봉·키세스 등 ‘빛의 혁명’으로 나라 정상화와 사회 대개혁까지 이루려는 민주적 열기가 그에겐 “집단 광기”다. 또 비상계엄은 ‘어설픈 해프닝’이라 대통령 탄핵은 과하단다.
한국에서 비상계엄으로 ‘난리’가 났을 때 스웨덴에선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을 앞두고 특강을 했다. ‘빛과 실’이란 제목 아래 그는 이십대 이후 (광주학살을 기억하며) 두 질문을 가슴에 품었다 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작가의 질문들은 늘 새 소설의 화두였다. 작가는 그 뒤 또 다른 질문과 씨름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아마 이런 질문들이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명작을 엮는 ‘빛과 실’이 됐을 터!
나는 이번 비상계엄과 그 이후 광장 민주주의 운동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음’을 재확인한다. 또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세상’조차 ‘사람들이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음도 절감한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다니, 형식논리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의 산 자들이 과거를 ‘성찰’하고 죽은 자를 ‘기억’하는 한, 바로 이 기억과 성찰을 통해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세상조차 아름답게 바꾼다. 그 한 예를 이번 사태에서 본다.
12·3 ‘계엄의 밤’,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 소속 707특임단 군인들! 당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이들을 투입한 목적은 ‘의원들의 계엄 해제 결의 저지’였다. 흥미롭게도 이 특임단 군인들은 야간투시경과 총, 실탄까지 갖고 갔으나 (학살자) 군인보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째서? 당시 위험을 느낀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본관을 잠갔다. 이에 계엄군이 팔꿈치로 유리창을 ‘천천히’ 깨고 창턱에 올랐다. 더 놀랍게도 그 앞장선 군인이 창문으로 오른 뒤, 그 좁은 창문 안쪽에 놓인 난초 화분을 ‘조심스레’ 옆으로 옮겨 놓고 뛰어들었다. 나는 이 장면을 잊지 못한다. ‘생명에 대한 예의’! 그 뒤는 알다시피, 작전 실패!
아마 계엄을 내린 대통령과 국방장관 눈에 이는 명백한 ‘태업’(sabotage)이다. 군대 용어로 ‘(군기가) 빠져도 한참 빠진’ 것! 돌이켜보면, 바로 이 태업의 태도가 모두를 살린 셈!
그렇다면 이 군인들은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움직였을까? 아마도 이들 특임단이 헬기를 타기 전까지는 (북한에서 온 오물쓰레기와 연관된) ‘대북 작전’ 내지 ‘침투 북한군’을 체포, 제거한다는 목표가 하달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헬기에서 내린 순간,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상부 명령에 따르는 척은 하되, 목적에 맞지 않는 행동을 무리하게는 않겠다며 ‘영혼의 저항’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을 현장에서 이끈 김현태 대령(특임단장)도, 또 곽종근 특전사령관도 ‘속았다, 이용만 당했다’는 느낌이었다. 12월9일엔 김현태 특임단장 역시 양심적 기자회견을 했다.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수시로 명령받으며 현장을 지휘했는데, ‘상황상 국회 진입과 봉쇄가 만만치 않다’ 하자 사령관 역시 ‘무리하지 말고 국민과 부대원들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겨라’ 했다. 김 대령은 (계엄법상 국회 해산은 위법임을 몰랐다며) “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으로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울먹였다. 곽 사령관은 ‘옥중 노트’에서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통과 직후 계엄군 철수를 지시했다”는 윤석열 주장이 거짓이라 밝혔다.
나는 여기서 ‘계엄의 밤’ 당시 국회 접수를 위해 투입된 특전사 요원들과 그 지휘관들의 내면세계엔 ‘양심의 구성’이 있었다고 본다. 군인, 특수임무를 띤 요원조차 그 외피 속엔 결국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이라고 다 같진 않다. 인간성 내지 영혼을 배신하지 않을 때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늘 ‘과정으로서의 존재’다.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기본은 영혼과 지혜이고, 이게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법률 용어에 ‘범죄의 구성요건’이란 게 있다.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성 등이 핵심이다. 범죄 행위의 주체와 대상이 있고, 행위와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체의 고의나 과실이 있되, 위법성 및 책임성 면제 사유가 없어야 비로소 범죄가 구성된다.
이를 원용해 ‘양심의 구성요건’을 사유해 본다. 그것은 기억과 성찰, 느낌과 의심, 용기와 결단이다. 우리가 평소에 과거의 사건들(특히 폭력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한다면, 현실 문제에 대해 달리 묻고 의심할 수 있다. 이에 자기 느낌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 용기요 결단이다. 법적으로 이는 ‘부당 명령 거부권’이다. 이것이 사람과 세상, 자신을 구한다. 이 과정에서 매 순간 판단의 기준은 물질적 이익 아닌 ‘사회적 진실’이다.
홍 시장의 말처럼 “더 큰 대한민국으로 가려면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양심 구성’을 통해 사람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 ‘생각 없음’이 악을 만든다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명제를 방증하듯, 국회 계엄 종료 뒤 철수하던 한 병사가 시민들에게 거듭 “죄송합니다”라며 뒷걸음질 치던 모습도 생생하다. 이에 비해, 홍 시장의 ‘해프닝’ 발언은 여전히 ‘양심 구성’이 요원하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사실, 양심은 돈·권력에의 ‘집단광기’에서 벗어나야 올바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게 비단 홍 시장만의 일일까? “나는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 하지만, 영혼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던 헬렌 켈러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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