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은혼/장송의 프리렌/던전밥/그 비스크 돌은 사랑을 한다
올해 본 애니들의 후기를 짤막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올해의 애니는 은혼 복습으로 시작했다.
은혼은 애니를 보기 시작한 시기인 중학생 때부터 본 애니다.
애니에 재미를 붙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내 안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애니 중 하나다.
중학생 때 이걸 보다니, 너무 일렀나. 이건 딱 성인용 애니가 맞다.
그때는 긴토키가 멋진 오빠.. 내지는 아저씨였다면 이제는 그냥 동년배 같음.
생활에 절여진 성인. 하지만 할 땐 제대로 함. 지저분한 농담이 젤 재밌음.
어른이 되고 보니 개그코드도 더 잘 맞고, 그냥 피식피식 웃으며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애니로 이만한 게 없다.
이런 일상+개그물로 이렇게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애니가 사실 은혼 말고 더 있을까..
하나의 장르로 불리는 ‘은혼’을 대체할 작품..? 은 아마 앞으로도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거침없이 제3의 벽을 뚫고, 경쟁작을 패러디하고, 정치인 풍자까지 했다는 점에서..
예전에도 그랬지만, 은혼의 진지한 스토리 파트인 시리어스 편에서 자꾸만 중도하차하게 된다.
이번엔 그래도 조금 더 견디고 봤지만, 여전히 결말까지 못 견딘 건 안 비밀ㅋ
캐릭터들의 멋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긴 하지만.. 극장판이 된 홍앵 편이나 요시와라 편을 제외하면.. 뒤로 갈수록 전개가 진지하다 못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이 싸움이 왜 시작됐고 목표는 뭔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게 은혼 시리어스 편의 특징이다..
은혼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랄까.
그래도 지친 직장인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이번 정주행도 즐거웠습니다.
은혼의 남캐들도 모두모두 사랑해.
입 벌려 새로운 이세계물의 등장이다.
사실 나는 이세계물 애니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 유명한 리제로도 아주 초반에 하차했다. 그나마 재밌게 본 작품이라면 소드아트온라인 정도?
어쨌거나 유서 깊은 이세계물은 큰 틀을 유지한 채 변주를 계속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조금만 들여봐도 장르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던 작품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살아남은 장르는 강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장 전형적인 이세계물이라 하면 전사, 엘프 등으로 이루어진 용사들이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모험을 하는 내용일 것이다.
또, 이세계물은 메인으로 내세울 히로인 캐릭터에 공을 많이들이고, 하렘물인 경우가 많다.
이세계물의 이런 특성이 내가 이 장르에서 눈을 돌리게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4년에는 이세계물의 기본적인 배경을 유지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설정을 선보인 작품들이 등장했으니, 바로 장송의 프리렌과 던전밥이다.
던전밥은 던전의 생물들로 요리를 해 먹는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던전을 살아있는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는 시도도 너어무 신박했다.
마치.. 스톱모션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만드는 요리 영상.? 그런 걸 보는 듯한 묘한 만족감이 드는 애니였다.
뿐만 아니라 또 어떤 던전 생물이 나올지, 앞으로 주인공들은 어떻게 될지 떡밥을 적재적소에 잘 숨겨놓아 흡입력 있는 전개를 펼친다.
무슨 일이 있든 마지막에는 던전 생물로 요리를 해 먹으며 "던전밥, 아 던전밥!" 하는 내레이션이 좀 어이없으면서도 힐링된다. 어쨌든 던전 모험도 식후경이니까!
장송의 프리렌은 기존 이세계물의 모험이야기와는 상당히 맥을 달리한다.
1화부터 모험이 끝난 모험가들을 비추며, 모험이 끝나고 수십 년 후, 엘프 프리렌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인간 전사 힘멜을 이해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의 이야기다.
수천 년의 수명을 가진 프리렌이 힘멜의 자취를 좇아 그를,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그리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우리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이 된다.
그래서 장송의 프리렌은 명작이다..
너무나도 짧은 인간의 삶에서 왜 어떤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그 순간들이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운지를 발견하며 조금씩 힘멜을 이해하게 되는 프리렌의 모습이 자꾸만 코끝을 찡하게 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고 자꾸만 꺼내어 보여준다.
프리렌과 함께 여행하는 캐릭터들도 전형적인 캐릭터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괴물과 싸우는 건 무섭고, 귀찮은 건 귀찮다고 말하는 슈타르크와
기존의 이세계물 여캐릭터들과는 달리 늘 차분하지만 때때로 쉽게 토라지며, 수천 년을 산 프리렌의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페른.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들 아닌가.
그래서 이들의 모험과 성장에는 더욱 몰입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짜릿하다.
사랑하는 이슬아 작가님의 두 애니에 대한 글을 썼는데,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두 작품이 훌륭한 이유를 너무나 잘 써주셔서, 나조차도 두 작품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이슬아의 갈등하는 눈동자]헤어진 뒤에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면 – 경향신문
[이슬아의 갈등하는 눈동자]미궁, 빵, 눈물 – 경향신문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언젠간 봐야지 하고 벼르고 있다 드디어 본 비스크돌.
이 애니는 그냥…
마린이라는 캐릭터를 남겼다.
딱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환상과 그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담은 미연시 같은 내용이다.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이 놀랍지만..)
특히 그 첫 코스프레에서 땀을 닦아주는 장면ㅋㅋㅋ은 진짜 미연시의 한 장면 같았다.
그래서 하나도 거북하지 않았냐면 그건 아니지만..
마린의 매력이 모든 걸 씹어먹는다.
예쁘고 섹시한데,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며, 거기다가 배려심도 깊고 연애에는 서툰 모습도 보여준다.
물론 남주 앞에서 쉽게 훌러덩훌러덩 벗어던지는 거야 판타지에 가깝겠지만.. 그 외에는 제법 현실적인 10대 소녀의 모습을 담아냈다.
왜 마린 마린 하는지 납득이 될 만한… 앞으로도 길이길이 매력적인 여캐로 언급될 마린을 낳은 애니.
그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남주 이름 기억도 안 남
미지의 세계에 대해 탐구하고 경이를 충분히 느끼기 위한, 그리고 미지의 타인들을 연결하기 위한 기획을 추구합니다.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