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전시장 된 백악관… 전 세계는 어쩌다 억만장자 6명의 놀이터가 됐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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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빨간색 테슬라 모델S에 나란히 앉아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스페이스X, 테슬라, X),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프랑스 경제 저널리스트 크리스틴 케르델랑은 신간 ‘정부 위에 군림하는 억만장자들’에서 이 6명을 우리 삶을 위협하는 억만장자로 지목한다. 부의 집중이 문제가 아니다. 세계는 넓고 부자는 많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 억만장자의 수는 2,640명(2023년 3월 기준). 명품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주가가 오르면 종종 세계 부호 1위에 오른다. 유명세까지 겸비한 워런 버핏도 있다. 그렇다면 이 여섯 명은 다른 억만장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저자는 여섯 명의 억만장자들이 막대한 ‘자본 권력’을 무기로 우주, 보건, 국방, 외교, 교육 등 공공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보건이나 교육 등에서 기업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외교나 국방처럼 국가적 문제가 민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머스크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의 기술력은 이미 미 항공우주국(NASA)을 넘어섰다. 타국(프랑스)의 우주비행사(토마 페스케)가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갈 때도, 머스크의 로켓인 팰컨9을 탈 정도다. 지구 주위를 도는 저궤도 위성 3분의 1이 이미 그의 소유다. 외교에도 개입했다. 중국에 많은 테슬라 공장을 두고 있는 머스크는 “대만이 중국에 복속되길 바란다”고 밝혀 친중 행보를 보였다. 미 정부의 공식 입장과 전면 배치된다.
미국 테크 기업들은 전 세계 안보 지형에도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 지원에 힘입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대응했다. 머스크가 운영하는 위성 통신 시스템 스타링크 덕에 우크라이나는 드론으로 항전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들 기업들이 언제라도 마음을 바꾸면 우크라이나의 전선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제프 베이조스 미국 아마존 창업자의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이 개발한 우주선 ‘뉴 셰퍼드’가 2021년 7월, 미국 텍사스주 발사장에서 우주로 발사되고 있다. 반혼=AP 연합뉴스

제프 베이조스(가운데) 아마존 창립자가 2021년 7월, 미국 텍사스주 반혼에서 우주 여행을 마치고 귀환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반혼=AP 뉴시스
세계 외교와 안보만 주무르는 게 아니다. 인류의 미래도 이들 억만장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우주 여행’, ‘화성 이주’ 외에도 뇌 임플란트와 같은 ‘트랜스휴머니즘’, ‘수명 연장(죽음의 정복)’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인류의 명운이 걸렸지만 공론의 장은 없다. 각국 정부와 달리 이들은 거대 자본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을 선점하고, ‘게임의 규칙’을 직접 만든다.
자본 앞에 국경은 없다. 이들은 이미 하나의 기업을 초월한 ‘초국가적 존재’로 인식된다. 일례로 덴마크는 2017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IT 기업들을 전담하는 대사를 임명했다. “해당 기업들이 한 나라에 준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이들이 가진 권력엔 기한이 없다.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이야 4년 후면 퇴임하지만 문제의 억만장자는 여전히 자신들이 세운 제국의 왕좌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9년 7월, 미국 하원 금융위에서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 관련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억만장자들이 전 세계를 장악하는 현실은 과도한 우려일까. 초강대국 미국도 속수무책이다. 억만장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 테슬라 차량 5대를 공개적으로 들였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연신 “아름답다”며 시승을 하더니 테슬라 차를 구매하겠다고 발표했다.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으면서, 테슬라 주가가 계속 빠지자 트럼프 특유의 쇼맨십을 활용해 이를 만회하고자 마련한 이벤트였다. 미 정치매체인 폴리티코는 이를 두고 “백악관이 테슬라의 임시전시장”이 됐다고 꼬집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소수의 인물이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마음대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며 조세 제도 정비, 부당 경쟁 방지, 개인정보보호와 같은 합당한 규제에 대해 국가적으로 공조할 것을 제안한다. 각국 정부가 공조해 페이스북의 자체 암호화폐였던 ‘리브라’ 도입을 무산시킨 것을 대표적 성공 사례로 든다. 선출되지 않은, 이 억만장자들의 권력을 제지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국민의 허락 없이 정부 자리까지 넘볼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경고가 섬뜩하다.
정부 위에 군림하는 억만장자들·크리스틴 케르델랑 지음·배영란 옮김·갈라파고스 발행·308쪽·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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