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제 불가능한 삶과 영화감독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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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는 어엿한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며, 바람직한 영화 작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당연하게도 스필버그가 스스로의 삶과 능력을 추켜올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영화 중반, 주인공이자 스필버그가 투영된 새미는 친구들과 전쟁 장면을 촬영한다. 이때 새미는 주인공 역을 맡은 친구에게 연기 지도를 하게 되는데, 친구는 지나치게 몰입해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카메라로부터 멀리 걸어간다. 이 장면은 삶의 통제 불능성을 보여준다. 친구는 새미의 영화를 벗어나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만듦으로써 새미가 통제할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새미는 그가 현상하는 삶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낄 뿐이다.

통제 불가능한 삶에 대한 무력감은 새미가 처한 상황과 결합하여 강해진다. 이때 새미는 아버지의 친구 베니와 엄마 미치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새미가 차마 어쩔 수 없는 삶의 영역은 곧 친구의 연기의 형식을 빌려 영화 제작 현장과 스크린에 재현된다. 영화는 새미의 연출 의도를 벗어나 제작되었으나 사람들에게 크나큰 박수를 받게 된다. 이때 영화의 제목은 "Escape to Nowhere"로 보여진다. 새미의 영화로부터 멀어지지만 그저 삶 안에서 걸음하고 있을 뿐인 주인공의 마지막 움직임은, 곧 영화라는 매체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삶을 뼈아프게 체감시킨다. 

한 차례 영화의 연출과 재현에 실패한 새미의 다음 작품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 행사를 촬영하는 식으로 제작된다. 이때, 베니는 가족 사이에서의 사건들을 통해 연출자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던 차이다. 새미의 아버지는  버트는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고 이혼을 준비한다. 이때 새미는 현실을 외면하고 촬영한 필름을 편집하는 데 집중한다. 새미는 편집을 통해 스스로의 삶 위에 환영을 덧씌운다. 이제 그는 무방향의 삶 안에서 무력함 대신 영화를 제작할 용기를 갖춘 듯하다. 

새미가 편집을 통해 만들어낸 것은, 자신을 괴롭힌 친구 로건을 일종의 영웅처럼 묘사한 선전 영화다. 환영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대부분의 학생과 달리, 로건은 멋지게 묘사된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격효과를 얻게 된다. 피사체로서의 자신과 관객으로서의 자신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과 괴리감은 새미가 만들어낸 환영을 또렷하게 인식하고 해체하며 로건에게 그 기능을 다한다. 그는 이제 삶에서의 자신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변화를 얻는다.

이 다음날 새미의 부모는 이혼한다. 미치가 남편을 떠나 베니에게 가는 것을 영화는 새미가 꿈을 찾아 가는 길과 비교하기도 한다. 스필버그는 이렇듯 환영을 만들고 제시하는 직업을 불륜에서의 환상과 견주어 둔다. 그러니 이후 할리우드에서 존 포드를 만났을 때 그가 "왜 예술을 하려 하지? 이 일은 널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라고 건네준 말은 그 이중성을 재차 언급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소개를 통해 만나게 된 존 포드는 새미에게 사무실의 그림들에서 지평선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보라고 한다. 이때, 그림들의 지평선은 프레임 상단 또는 하단에 있다. 존 포드는 지평선이 상단이나 하단에 있으면 관객들은 흥미를 느끼고, 중앙에 있으면 지루해한다고 말한다. 행운을 빈다고 말해주더니, 썩 꺼지라고 소리치는 존 포드를 떠나 새미는 할리우드의 길거리를 기쁘게 걸어간다. 당차게 걷는 그의 뒷모습을 촬영하던 카메라는 잠시 뒤에 급하게 화면을 틸트 업해서, 그가 걷는 땅이 프레임 아래에 위치하게 조정한다. 영화 내내 화면에 등장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던 스필버그는 어느새 카메라 뒤로 돌아가 자신이 영화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음을, 어느새 영화감독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스필버그라는 감독이 자신의 삶과, 삶만큼 소중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묘사할 수 있는 훌륭한 샷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삶은 아름답기도 하며, 고통스럽기도 한, 무엇보다 통제 불가능한 성격을 가진다. 그것을 재현한다고 말하며 환영을 제공하는 영화는 촬영 행위를 통해 프레임을 완벽히 통제하고자 시도한다. 영화감독은 자신의 프레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프레임 안에는 자신이 허락한 것들만이 허가된 위치에 놓여, 약속된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전 테이크보다 0.2초 늦게 카메라가 움직인 테이크를 OK컷으로 적는다면, 그 테이크가 OK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개연성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감독으로 불리어야 한다고, <파벨만스>를 다시 보면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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