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로 읽는 소비문화] ‘보통’이 주목받는 지금 – 모비인사이드

“예전에는 어려움을 이겨내려 해서 문제였다.
지금은 진다. 뭘 이기려 하지 않는다.
나는 안정적이다. 명상하고, 다도하고.
생활 패턴은 개판이다. 내 패턴이 생긴 게 좋은 거다.”

 
얼마 전 방송 프로그램 ‘유퀴즈 온더블럭’에 가수 지드래곤이 출연해 화제였다. 그의 지난날은 다사다난했지만, 그는 이제 어려움을 굳이 이기려 들지 않고 순응한다고 말했다. 생활도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자기답게 지내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7년 만에 발표한 신곡과 눈에 띄는 패션 등 여러 가지로 주목받았지만 그중에서도 팬들은 그가 편안해진 모습이 보기 좋다는 반응을 남겼다.
 
대단히 애쓰기보다 편안하게 현재 삶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변화는 우여곡절이 많던 슈퍼스타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대한민국은 ‘아주 보통의 하루’에 주목하고 있다. 1년 전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오마카세를 예약하기 위해 ‘스강신청(스시+수강신청)’을 하고,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준비해 골프장에 가 ‘특별한 하루’를 만드는 것에 애썼다면, 지금은 특별하지 않아도 별 탈 없이 무난한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는 이러한 소비자의 변화를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 트렌드라고 명명했다. ‘아보하’는 7년 전 발표된 ‘소확행’ 키워드의 뒤를 잇는다(『트렌드 코리아 2018』).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은 먼 미래에 찾아올 큰 성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행복의 개념이 ‘지금, 여기, 확실한 것’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린 키워드였다. 물론 여전히 소확행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사용된다. 다만 우리는 이미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라 일상어가 돼버린 소확행에서 나아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미묘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호응하는 콘텐츠에서 드러난다. 몇 달 전 ‘인생녹음중’이라는 채널 숏츠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빠르게 인기가 높아졌다. 짧은 영상 몇 개만 올렸을 뿐인데 모든 영상이 수백만 건 조회수를 기록했다.
 
가장 인기 있는 ‘결혼 7년 차 남편의 반응속도’라는 제목의 영상은 현재 11월 기준, 2000만 뷰를 넘겼다. 해당 영상은 차를 타고 가던 중 아내가 갑자기 부르기 시작하는 노래에 남편이 즉각 추임새를 넣는 내용이다. 보고 나면 ‘그래서 무슨 내용이었지?’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시청자는 두 사람의 편안한 ‘티키타카’를 보며 ‘그냥 이런 일상을 살고 싶다’며 대리만족을 표했다.
 
 
 
 
품목으로 치면 립스틱 대신 치약에 투자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명품’ 립스틱과 같은 스몰럭셔리로 소소한 자랑을 하기보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이 없어도 고급 치약을 사용하며 스스로를 대접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 취미에서는 뜨개질과 필사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화려한 취미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조용히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아이돌 장원영이 사용해 유명해진 ‘럭키비키’ 표현은 긍정적 사고방식을 상징한다. 그는 빵집에서 앞사람이 빵을 다 사 가는 바람에 새 빵이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너무 럭키하게 제가 새로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예요?”란 반응을 보였다. 동일한 현상도 해석하기에 따라 나에게 긍정적인 이벤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영적 사고’ 확장판으로 온라인에는 ‘흥민적 사고(손흥민 선수)’ ‘희진적 사고(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등 어록을 남겨 유명해진 사람들의 ‘사고 변환기’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현상이 독특한 점은 사람들이 유명인의 패션과 재능, 자산 등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거 말고 ‘사고방식’이라는 내면적인 걸 강하게 동경한다는 것이었다.
 
 
 
 
 
복권을 사며 일확천금 기회를 노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혀 영험한 느낌을 주지 못하지만 귀여워서 기분이 좋아지는 부적을 사며 일상의 작은 행운을 기대해 보는 것에 가깝다. 이에 기업들의 행운 마케팅도 늘고 있다. 행운을 기원하는 굿즈를 만들거나, 앱에서 매일 오늘의 행운 점수를 알려주는 소소한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이러한 행운 기원은 행복 추구와는 결이 다르다. 없으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있으면 기분 좋은 이벤트에 가깝다.
 
 
 
 
한편으로는 ‘행복’에 대한 피로증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소확행’의 본질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근래 소확행은 ‘소비는 확실한 행복’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고생한 날에는 값비싼 디저트라도 사 먹으며 인증해야 ‘소확행’이 완성되는 듯 느끼고 여행지를 가면 사진을 찍어 내 행복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내가 성취하고 증명해야 하는 것, 부담스러운 단어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상과도 관련이 깊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앞으로도 저성장 경제가 예상된다. ‘행복’이 현재 상태보다 더 좋은 상태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라면, 정체사회에서 행복이란 갈수록 갖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미 내가 가진 것이 되도록 행복을 재정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아보하 트렌드를 두고 ‘요즘 청년은 야망이 없다’거나 ‘그저 정신승리 아니냐’며 부정적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보하 트렌드는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놀랄 만큼 열심히 산다. 다만 과거의 행복관이 현재에도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뿐이다.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행복 저울’의 눈금을 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지금 그 자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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