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용 교사.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1학기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정부·국회·학교현장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는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육자료’로 낮추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2025년 1월17일 AI 교과서 검증 청문회를 열었다. 정부는 1월21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여기에 더해 교육부가 2025년에는 일단 학교들이 AI 교과서를 자율 채택하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미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천재교육 등 6개 AI 교과서 개발사들이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서울 신명중학교 김헌용(38) 영어교사(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에게 물었다.
—AI 교과서 비용 논란이 크다. 시도교육감들이 AI 교과서 구독료 등 비용을 지방재정교부금에서 부담한다는 방침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다.
“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향후 4년간 약 5조원의 비용이 들고, 이 비용이 최대 6조여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추정이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한다는 건데, 국세 예측이 빗나가면서 이미 세입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지난해에 5조원 정도 감액됐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국세’랑 직결돼 있는데, 여기에 AI 교과서 재정 부담을 얹어주는 꼴이니 다른 꼭 필요한 사업들이 축소될 위기에 놓여 있다.”
—선생님은 이전 한겨레21 인터뷰(제1540호 참조)에서 ‘현재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은 상위 15%를 위한 교육이라 위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구조’라며, 공교육의 방향성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재정 부담으로 다양한 사업들이 축소되면, 그 방향성에서 멀어진다고 보는 건가?
“멀어지는 상황이 될 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 누구도 ‘먼저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국가 주도 사업으로 추진해 오히려 재정에 구멍이 나는 상황이 발생한 거다. 재정이 줄어들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저 같은 시각장애인 교원을 예로 들면, ‘교과용 도서’에 원래 교과서와 지도서가 포함됐었는데 이제 ‘중학교 지도서’가 제외됐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시각장애인 교사들이 ‘점자 교과서’를 신청할 수가 없다는 거다. 원래는 지도서를 교과용 도서의 일환으로 보고 지방 예산으로 점자 제작을 해줬는데, 이제는 시도 교육청 지원 의무가 사라졌다. 국립특수교육원에 있는 별도 예산으로 제작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런 식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거다.”
—영어 과목은 AI 교과서 도입 과목(수학·영어·정보) 중 하나다. 사실 한 교실 안에 느린 학습자도 있고 빠른 학습자도 있는데, AI 교과서를 통해 수준별로 연습하면 장점도 있지 않나.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보통 챗지피티 같은 생성형 AI 기능을 기대하는데, 지금 AI 교과서는 책을 그냥 전자 형태로 옮겨놓은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를 풀고 정답을 확인하는 방식의 디지털 교과서랑 큰 차이가 없다. 예산 문제로 인한 기술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챗지피티, 제미나이 이런 것과 연동된 게 아니고 자체 모델이다. 사실 녹음하고 들어보고 저장된 해설을 보여주는 정도 차원이라면 이미 구글 클래스 등을 사용해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의 자기 주도성을 높여주는 효과도 미미할 거라고 본다. ”
—미국에서 출시된 AI 영어학습 앱보다 성능은 떨어지고, 학교 공교육이 추구하는 사람 간 상호작용 등 취지와도 멀어진다는 건가.
“개발사 가운데 출판사들의 경우 테크 회사도 아닌데다 많은 출판사는 또 테크 회사에 그걸 외주로 줬다. 출판사는 서책형에 특화된 회사인데, 기술력은 작고 재정 부담은 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겠나.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구조적으로 굉장히 섣부른 정책이었다. ‘AI 교과서’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일단 과대광고다. 오히려 기존 수업 방식에 교란이 생길 거다.”
—장애인 교원 관점에선 어떻게 보나.
“장애인 교원 관점으로는 일단 허들이 하나 더 생기는 거다. 왜냐하면 기존 교과서는 점자 교과서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해놓은 상태인데 AI 교과서는 많은 출판사가 웹 접근성을 준수한다고는 했지만 세부적인 테스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저희가 컨설팅단 운영을 했는데 2024년 7~8월쯤 2시간 정도 자문한 게 전부였다. 실제 사용자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도입해보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날 거다.”
—한겨레21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언론에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에 관한 관심도 부탁한다. 그동안 장애인의 생존권·이동권·노동권 등 기본적 권리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그것이 중요한 의제라는 데는 변함없다.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해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본권’만 충족되고 살아야 하는 존재는 아니다. 아기를 키우다보니 더더욱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이 느껴졌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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