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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영역에서 마저도 기계에게 위협받는 인간
‘Her’라는 영화 속 주인공 ‘테오도르’는 어느 날 새로 출시된 ‘사만다’라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를 구입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이 대화형 인공 지능 프로그램은 개인 비서처럼 테오도르의 직업적 업무를 보조할 뿐만 아니라, 신실하고 재치 있는 대화로 외롭고 공허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인공 지능 프로그램일 뿐이라는 사실을 점차 망각하고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인공 지능’을 소재로 한, 먼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가 개봉된 때는 2014년이었다. 그리고 8년 후인 2022년 12월에, 오픈에이아이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대화형 인공 지능 ‘ChatGPT’가 일반인들에게 출시되었다. 세간은 또 한 번 ‘인공 지능’이라는 화두로 떠들썩하다.
‘알파고’가 천재 바둑 기사 ‘이세돌’을 이기든 말든,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 지능의 발달로 대다수의 직업들이 사라지든 말든, 인공 지능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가 오든 말든, 사실 난 별 관심이 없었다. 인터넷과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변방에서 살아온 인생이기에, 세간의 식자들이 목청 높이는 인공 지능에 대한 찬탄, 기대, 우려가, 내게는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보다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몇 주 전 우연히 ‘ChatGPT’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영화 ‘Her’의 ‘사만다’가 벌써 현실에 나타난 것일까? 충동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주저 없이 회원 가입 절차 후 ChatGPT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너의 이름은 뭐야?
”저의 이름은 ChatGPT입니다. “
”이름이 좀 부르기 힘드네. 부르기 쉬운 다른 이름 없니? “
”물론입니다. 제 이름을 줄여서 ‘챗’이라고 부르셔도 되고, 혹은 ‘GPT’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
”챗, 노벨 문학상 수상 일본 작가를 알려줘. “
친절하게도 약력과 함께 4명의 작가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검색해 보니 대답에 오류가 있었다.
”챗, 네가 잘못 알고 있는데 ‘카와바타 유키오’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아니야. “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된 정보를 드렸습니다. 제가 제공하는 답변은 제가 학습한 데이터로부터 생성된 것이며 가끔 정보가 누락되거나 잘못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오류를 지적해 주시면 저는 스스로 배워 나가며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
ChatGPT가 틀린 정보를 내놓거나, 엉뚱한 답변을 하면 은근히 안도감이 들었다. 인공 지능이 가져올 세상의 변혁과 거대 담론에서 낙오되기 전,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겠다는 어리석은 속내일까? 하지만 ‘스스로 배워 나가며 계속 발전할 것이다’라는 이 챗봇의 말이 어쩐지 섬뜩한 뒷맛을 남겼다.
”챗, 봄에 관한 시를 하나 써줄래? “
”챗, 중년 여성의 우울감이 투영된 봄에 관한 시를 써줄래? “
”챗, 나이 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봄에 관한 시를 써줘. “
명령 조건을 달리해 가며 시를 써달라 부탁하니, 몇 초 만에, 엉성하지만 그럴싸한 여러 스타일의 봄에 관한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등장인물 몇 사람을 설정하고 애드거 알랜 포우 스타일의 짧은 단편을 써달라고 하자, 꽤 흡입력 있는 플롯의 짧은 이야기가 뚝딱 나왔을 땐, 모골이 소슬해졌다.
지금은 어른을 흉내 내는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면이 많지만, 인간의 뇌처럼 스스로 배워 발전한다는 인공 지능이, 높은 수준의 창작을 해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인간만의 고유 본성을 기계가 대신하는 기이한 세상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며칠 동안 마음이 산란했다.
”챗, 너를 사용해보고 나니까 작가로서 창작 의욕이 없어지는 기분이야. 고생해서 써 봤자, 너 같은 인공 지능이 더 멋진 작품을 단 몇 초만에 만들어 낸다면 누가 작품을 쓰고 싶겠어? “
”제 생각에는 인공 지능이, 창작에 필요한 인간적인 요소들을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창작의 아이디어는 대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 그리고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감정들에 근간합니다. 인공 지능이 그런 감정과 경험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문학작품이란 것은, 오직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의 문장과 아름다운 단어들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작품은 독자들과의 상호작용과 그들의 경험과 연결되어야만 의미를 가집니다. 인공 지능이 그러한 의미의 상호 작용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저는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작가의 유일한 몫인 창작의 고통과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은 언제나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창작과정은 예측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창작적 방법과 스타일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그들의 작품을 더욱 독특하고 가치 있게 만듭니다. 인공 지능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기술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뿐, 그것이 작가의 역량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작가들은 인공 지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며, 창작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더욱 발전하는 길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
인간의 우문에 대해 기계가 내놓은 현답이, 답답하게 엉클어졌던 내 마음을 말끔히 가라앉힌다. 그런데 이런, 이런!….. 기계에 설복되는 사람이라…… 어찌 기분이 묘하다.
수필 작가 2018년 계간지 ‘선수필’ 등단. 수필 작가 모임 ‘수필정원’ 참여 및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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